30년 베테랑·새내기 소방관, 60년된 亭子 지키려다 참변

    입력 : 2017.09.18 03:10

    [강릉 석란정 재발화, 잔불 정리중 기와지붕 무너져 순직]

    2015년 근처 호텔 신축후 금 가… 주민들이 보강 공사 등 요구
    내년 정년 예정 이영욱 소방위, 치매 노모 17년간 봉양한 효자
    임용 8개월 된 이호현 소방사, 고교 동창들 "늘 동료위해 희생"

    석란정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이영욱(왼쪽 영정)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
    석란정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이영욱(왼쪽 영정)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 /연합뉴스
    17일 오전 3시 51분 강원도 강릉소방서로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전날인 16일 오후 9시 45분에 불이 났다가 진압된 강문동의 목조 정자 석란정에 다시 연기가 난다는 신고였다.

    강릉시 경포119 안전센터 소속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 등 2개팀 4명이 출동했다.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자의 마룻바닥을 헤치며 잔불을 잡기 시작했다. 오전 4시 29분 작업에 집중하던 두 대원의 머리 위로 기와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진흙으로 지어 올린 지붕은 전날 화재 진압 때 뿌린 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우지끈 소리조차 없이 순식간에 내려앉은 진흙더미에 깔린 두 대원을 10여분 만에 동료들이 끄집어냈다. 병원으로 이송된 두 대원은 이날 오전 6시 53분과 5시 33분 끝내 숨을 거뒀다.

    숨진 이 소방위는 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있었다. 내년 7월에는 공로 연수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17일 오후 강릉시 강릉의료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된 고(故) 이 소방위의 빈소 입구에서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소방위의 부인(57)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상주인 아들 이인(36)씨는 "누구보다 소방관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구한다는 자부심이 강하셨던 분"이라며 눈물을 삼켰다.

    이 소방위는 1988년 서울 성동소방서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94년 강릉에 살던 부친이 병환으로 몸져눕자 병구완을 하기 위해 강릉소방서로 자원해 내려왔다. 2000년 초부터는 치매를 앓는 노모(91)를 극진히 모셔왔다.

    이 소방위와 함께 순직한 고 이호현(27) 소방사의 빈소는 이 소방위 빈소 옆에 차려졌다. 빈소 한쪽에서 이 소방사의 아버지 이광수(55)씨는 "지난해 6월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다고 집 안을 뛰어다니던 아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소방 업무만 해도 힘들 텐데 퇴근 후에는 집안일을 도맡아 해온 효자"라고 했다. 이 소방사의 꿈은 소방청장이었다. 아버지 이씨는 "소방청장이 돼 효도하겠다던 녀석이 이렇게 세상을 등지다니 이게 생시인 것이냐"며 가슴을 쳤다. 빈소를 찾은 이 소방사의 고교 동창들은 "늘 동료를 위해 희생하던 친구였다"고 했다.

    석란정은 1956년 지어진 뒤 강릉시가 관리했다. 지난 2015년 12월 정자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서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이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정자에 금이 가 인근 주민이 보강 조치 공사를 요구했다. 지난 6월 정자 주변에 3m 높이 가로막과 천막을 설치했다. 강원도소방본부 관계자는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화재로 붕괴된 강릉시 석란정 잔해를 한 소방대원이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선 16일 밤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급한 불길을 잡았지만, 물 무게와 잔불을 못 이긴 건물은 17일 새벽 손쓸 틈도 없이 주저앉았다(오른쪽 사진). 강릉시가 관리한 목조 건물인 석란정의 불타기 전 모습(왼쪽 사진). /연합뉴스
    화재 현장 주변에 폐쇄회로 TV 가 없어 원인 규명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정자 내부에 전기 시설이 없어 누전 탓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가림막 때문에 외부인은 출입이 어려우나 호텔 공사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실화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1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정밀 감식에 나설 예정이다.

    임무 중 순직한 소방관은 지난 2008년 이후 9년간 49명에 이른다. 39%(19명)가 화재 진압 중 변을 당했다. 구조 활동을 하다 숨진 소방관은 17명이다. 가장 최근 순직은 지난해 10월이었다. 태풍 '차바'로 침수된 울산 회야댐 인근에서 온산소방서 구급대 소속 강기봉(29) 소방교가 주민을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이튿날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소방관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제복을 입은 1년6개월 차 소방관이었다. 작년 5월엔 강원도 태백소방서 소속 허승민(46) 소방위가 강풍 피해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날아온 연립주택 지붕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2015년 12월 서해대교 주탑(높이 182m) 부근의 불을 끄던 평택소방서 소속 이병곤(54) 소방령이 교량 쪽으로 떨어지는 강철 케이블에 가슴을 맞아 순직했다.

    두 대원의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회의실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열린다. 고인들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된다. 소방청은 순직한 두 대원을 1계급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역정보]
    강릉 석란정 화재 발생 진압 중 소방관 2명 순직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