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自由' 연주한 부흐빈더, 통영을 달구다

    입력 : 2017.09.18 03:05

    [15~16일 '베토벤 사이클' 연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 오스트리아 출신 베토벤 전문연주자
    피아노소나타 전집 녹음만 세 번
    "50년간 50회 넘게 全曲 연주… 그의 음악 깊이 아직 다 이해못해"

    지난 주말, 경남 통영에 두 개의 태풍이 몰아쳤다. 서귀포 남쪽 바다에서 강풍을 동반하고 북진한 '탈림'과 함께 베토벤 전문가로 이름난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1)가 이틀간 연달아 몰아친 '베토벤 사이클' 공연이었다. 부흐빈더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음반만 세 번 녹음했고,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全曲·32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15~16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서울·부산·대구 등 각지에서 그를 보러 온 음악 애호가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첫날인 15일 저녁, 피아노 앞에 앉은 부흐빈더는 망설임 없이 건반을 두드렸다. 첫 곡은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에 처음으로 작품번호를 붙인 1번이었다. 이어 10번과 13번 '환상곡풍 소나타', 4번과 14번 '월광'까지 암보(暗譜)로 이끈 연주는 경이로웠다. 각각의 곡은 물론이고, 하나의 곡을 이루는 서너 개의 악장까지 색채가 뚜렷했다. 연주자 본인은 느린 안단테와 쾌활한 알레그로, 복잡하게 쌓아 올린 화음과 극단으로 대비되는 강약을 담담히 풀어냈지만 연주가 거듭될수록 감정은 고조됐다. 잔잔하던 서정은 '월광' 3악장에 이르자 격정으로 타올랐고 앙코르로 선보인 8번 '비창' 3악장까지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인 프로그램이었다.

    학구적 연주자로도 유명한 루돌프 부흐빈더는 “지름길은 없다. 악보를 복습하고 작곡가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일기를 파헤치며 속마음을 읽어내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구적 연주자로도 유명한 루돌프 부흐빈더는 “지름길은 없다. 악보를 복습하고 작곡가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일기를 파헤치며 속마음을 읽어내는 수준에 이르러서야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루돌프 부흐빈더 홈페이지

    다음 날 오전, 호텔에서 만난 부흐빈더는 전날 밤늦게까지 사인회를 해 지쳤을 법한데 쌩쌩했다. "나는 물도 커피도 안 마신다. 스카치위스키 'J&B' 한 잔만 있으면 푹 잔다"며 웃었다. "바닷가 횟집에서 싱싱한 모둠회, 초고추장에 무친 멸치회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콜레스테롤 수치 따지며 가려 먹으면 스트레스받아 못 살아요." 그는 첫 곡으로 덜 화려한 1번을 고른 데 대해 "내 모든 소나타 연주의 시작은 1번"이라며 "평생에 걸쳐 피아노 소나타를 쓰면서 낡은 형식을 파괴하고 혁신적인 화음을 도입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베토벤의 처음을 보여주기에 그만한 곡이 없다"고 했다.

    1946년 체코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 부흐빈더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선율을 피아노로 따라 치며 놀았다. 열 살 때 클래식 음악의 성지(聖地)인 무지크페라인에 데뷔한 그는 1966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20년 전만 해도 내 시야는 좁았어요. 나이가 좀 더 들고서야 베토벤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자유'임을 깨달았죠." 그는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베토벤이 내밀한 고백을 풀어놓기 시작한 27번을 보라"고 했다. "박자가 느렸다 빨랐다 변화무쌍해요. 불안하고 불행했던 베토벤이 자신을 구속한 현실의 끈을 풀어헤치고 초월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려는 의지를 담은 겁니다." 지난 50년간 50회 넘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지만 "아직도 베토벤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한 부흐빈더는 "악보만 봐서는 그 깊이를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작곡가가 베토벤"이라고 했다. "그래서 못 끝내겠어요. 피가 되어 내 혈관을 흐르는 느낌이죠. 하루 종일 구석에 박혀 베토벤이 피아노 치는 걸 눈앞에서 직접 볼 수만 있다면…."

    소나타 2번과 9번, 15번 '전원'과 27번, 23번 '열정'을 선보인 둘째 날 연주에서 압권은 특히 '열정'이었다. 거친 표현을 토해내다가 한순간 건반을 놔버리고 속박에서 벗어난 듯 두 손을 내려뜨린 마무리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한려수도의 비경을 뒤흔든 태풍처럼 부흐빈더가 일으킨 마음속 광풍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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