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김정은의 위험한 '원맨쇼'

  •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입력 : 2017.09.18 03:12 | 수정 : 2017.09.18 17:42

    中 무시하고 핵실험 한 김정은, 6년째 訪中도 못 한 국제 고아
    장성택 처형, 김양건 사망 후 '바른 소리' 할 측근 사라져
    남한 내 우호세력도 적으로 돌려… 北 엘리트, 金의 최후 생각할 것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최근 일본 열도를 통과한 화성-14호 미사일에 이어 6차 핵실험, 괌 타격용 중거리급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 정권은 오래전부터 핵과 미사일 보유만이 궁극적으로 체제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 길이 매를 불러 화(禍)를 자초할 수도 있다.

    1994년 북한은 1차 핵실험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당시 미사일, 핵 능력이 전무했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더라면 파국적 종말을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중반 최악 식량난에 따른 체제 붕괴 위협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역이용해 극복했고 마침내 10년 만인 2006년 김정일은 1차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그 후 김정은 시대에 3차 핵실험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고모부 장성택과 의견이 벌어졌다. 당시 장성택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하는 첫해이고 김정은 정권 초기이므로 무리한 핵실험보다 국력을 키우고 시기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김정일이라면 시 주석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가 집권하는 시점에 핵실험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실험 후유증으로 김정은은 6년째 중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국제 고아 신세가 됐다.

    장성택 사건으로 죽음의 문 앞까지 갔던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이 '목함 지뢰'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눈에 들었다. 그는 장성택 다음으로 김정은에게 제대로 된 제안을 하는 전략가였다. 지도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전략을 제시하는 그의 말이 김정은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15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때 '은하 3호'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가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평양으로 부르는 데 성공했다. 불행히도 그해 12월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전략 부재에 빠진 김정은의 제멋대로 '폭주'가 시작됐다. 2016년 1월 모란봉악단을 베이징으로 보내 북·중 관계를 풀어보려던 김양건의 전략은 그가 사망하고 김정은이 또다시 독단적 판단을 내리며 물거품이 됐다. 베이징에서 자신의 모란봉악단을 무시한 시 주석에게 화난 김정은이 그 보복으로 즉시 4차 핵실험 버튼을 눌렀고 그해 가을에 연이어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사실 6차 핵실험을 결정하기 전 북한은 그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 중요한 외부 변수를 맞고 있었다. 북한을 압박하던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고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노련한 김정일이었다면 이 호기를 그냥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 경제 압박을 대남 경제 협력 시도로 극복하고 국력을 안정시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15년 전 북한과 지금 북한은 많이 달라졌다. 한류(韓流)가 북한 내부를 변화시켜 온 것이다. 통일전선부와 중앙 기관의 모든 단위에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남 협력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가보위성은 남쪽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김정은 옆에는 바른 소리를 할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과거 어떤 상황에서도 객관적 정세 판단과 정책 결정에 따른 후유증까지 정확히 보고하던 각 부서의 전문 집단이 김정은의 생각과 코드에 맞추는 광대로 전락했다. 김정은의 판단에 맞서다가 고사총에 처형당한 사람들을 목격한 이후의 현상이다. 2014년 중국과 맺은 관계 단절을 지시한 김정은에게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교류는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의 비참한 운명이 대표적이다.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김정은의 독단적 '원맨쇼'는 김일성·김정일이 반세기 동안 남한에 만들어 놓은 '우군'도 적으로 돌려놓았다. 핵·미사일 성공을 축하하려 평양에 모인 10만 군중은 화려해 보이지만 이미 희망을 잃었다. 북한 내 엘리트들은 이제 무한 고립의 국제 고아가 된 김정은 정권의 최후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물정보]
    국제 고아가 된 김정은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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