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샘터 떠나는 샘터

    입력 : 2017.09.18 03:16

    십수년 전이다. 출판사 '샘터' 창립자 김재순, 막내 김성구, 기자, 셋이 앉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은 본디 사람에게 무한한 흥미가 있다. 사람 얘기 많이 써라." 기자 귀가 번쩍 뜨인다. 신문사에서 늘 듣던 말과 똑같았다. 막내는 샘터 대표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샘터엔 세 기둥이 있다. 글 잘 쓰는 사람, 글은 못 써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성공도 못 하고 글도 못 쓰는 사람이다. 샘터는 셋째 사람을 찾아가 같이 울고 웃어야 해."

    ▶7선에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은 정치 인생 못잖게 샘터에 열정을 쏟았다. 1970년에 창간했고, 9년 뒤 동숭동 대학로에 붉은 벽돌 사옥을 지었다. 당시 고교생 김성구는 축하를 하러 온 길옥윤이 '볼이 미어지게 색소폰을 불던' 모습을 기억한다. 샘터가 대학로 시대를 열며 팡파르를 울린 날이었다. 막내는 초등생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리욱 피천득 장면 오천석 같은 당대의 문사와 정객에게 세배를 다녔다. 샘터는 그들의 인생 좌우명을 따다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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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 대학로 시대는 '대한민국 글쟁이'들과 함께했다. 법정 피천득 정채봉 최인호 장영희 이해인 같은 불멸의 이름들이다. 대부분 고인이 됐다. 피천득이 샘터에서 책을 내면 그걸 핑계 삼아 선생의 반포 집으로 놀러 갔다. 김성구는 가끔 선생을 대중목욕탕에 모셨다. 피천득은 샘터를 키운 대표 글쟁이였고, 샘터 사장은 늙은 글쟁이의 등을 밀어 드렸다. 피천득은 소식가였다. "아침은 혼자 먹고, 점심은 친한 친구와 먹고, 저녁은 적(敵)과 먹으라 했소. 적과 먹으면 많이 먹을 수 있겠소?"

    ▶샘터가 38년을 정들었던 붉은 벽돌집과 그 벽돌집 꼭대기 층까지 푸르게 덮었던 담쟁이덩굴과 작별을 고하고 사옥을 옮긴다. 김재순이 작년에 세상 뜨고 자손들에게 상속세 부담이 컸다고 했다. 가업인 출판을 지키려면 사옥을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니 입맛이 쓰다. 이곳은 이 나라 문인들이 시원하게 목을 축이던 그야말로 샘터였다. 이제 샘터가 샘터를 떠난다.

    ▶출판사는 사세가 피면 목 좋은 곳에 빌딩을 올린다. 엉뚱하게 땅값이 많이 올라 부동산으로 큰돈을 만진 출판사도 있다. 책 시장이 졸아들고 재정이 달리면 사옥을 팔고 싼곳을 찾아 떠난다. 한 가지 다행은 샘터 사옥의 새 주인이 스타트업이나 비영리 기구를 입주시켜 공공 공간 비슷하게 쓴다는 것이다. 샘터 측이 그런 인수자를 물색해 온 것 같다. 샘터가 새 샘을 파 성공하길 바라지만 대학로의 문화적 랜드마크 하나가 사라진다는 허전함을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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