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환하게 웃었던 곳

    입력 : 2017.09.15 03:03

    행려병자·노숙인 무료 진료… '貧者의 보금자리' 요셉의원 30년
    23일 대방동성당서 기념 미사

    지난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했을 때다. 주변에서 장례미사 안내장에 쓸 사진을 백방으로 구했다. 김 추기경의 삶 전체를 압축해 보여줄 한 장면이 필요했기 때문. 딱 알맞은 한 장을 발견했다. 김 추기경 특유의 너그러운 미소가 환하게 얼굴에 퍼진 사진이었다. 김 추기경이 1997년 9월 27일 서울 영등포의 행려병자 무료 진료소인 '요셉의원'을 찾았을 때 모습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사진기자 앵글에 포착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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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인 1997년 9월 요셉의원이 서울 영등포역 옆으로 옮겨 재개원할 때 방문한 김수환(오른쪽) 추기경과 선우경식(왼쪽) 원장. 낮고 어두운 곳일수록 밝게 웃었던 김 추기경이 가장 환하게 미소 지은 곳이 요셉의원이다. /조선일보 DB
    '빈자(貧者)의 보금자리' 요셉의원이 30주년을 맞았다. 요셉의원은 1987년 8월 고(故) 선우경식(1945~2008·세례명 요셉) 원장이 서울 신림동 판자촌에 문을 연 행려자·노숙인 무료 진료소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미국 유학을 다녀와 당시 서울 한 종합병원 내과 과장으로 있던 선우 원장은 의료봉사 차원에서 요셉의원을 시작했다. 처음엔 동료 의사들과 함께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선우 원장이 도맡게 됐고, 종합병원은 그만뒀다. 1997년엔 현재의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으로 이전해 재개원했다.

    요셉의원이 이뤄온 역사는 기적이다. 주민등록조차 갖춰지지 않은 행려자와 알코올중독자 등을 무료로 돌봐온 것이 연인원 63만명, 무료 급식 인원도 6만명이다. 진료 과목도 내과, 외과, 신경외과, 안과, 피부과, 치과 등 20여 개에 이른다. 2013년엔 필리핀 마닐라에 '필리핀 요셉의원'도 열었다. 2000여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1만명이 뒤에서 떠받쳐줘 가능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요셉의원 사랑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2007년 10월 요셉의원 20주년 기념식. 이미 노환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김 추기경은 요셉의원 기념미사엔 참석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미사 직전 컨디션이 나빠졌다. 그가 급히 친 전보는 미사 도중 도착했다. '요셉의원 20년에 선우 원장선생님과 봉사 및 환우 모든 이에게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 있으소서.'

    독신으로 수도자처럼 요셉의원을 섬겼던 선우 원장은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다가 위암으로 2008년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엔 김 추기경도 선종했다. 선우 원장이 떠난 후엔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에 앞장선 이문주(80) 신부와 최영아 내과 전문의가 각각 원장과 의무원장을 맡아 이끌었다. 현재는 조해붕 신부와 신완식 박사가 각각 원장과 의무원장을 맡고 있다. 2016년엔 대통령 표창과 제28회 아산상을 수상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오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대방동성당에서 요셉의원 개원 30주년 기념미사를 올린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사회사목담당 유경촌 주교,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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