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40번 버스 사건'

    입력 : 2017.09.14 03:16

    5년 전 음식점 채선당에서 불친절한 종업원과 다투다 폭행당했다는 어느 임신부 글이 인터넷에 올랐다. '임신 사실을 알렸는데 배를 발로 걷어차였다'고 했다. 온라인이 발칵 뒤집혔다. 네티즌들은 융단폭격을 가했고 업체는 사과문까지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이 일어났다. 경찰이 CCTV로 확인했더니 다툼은 있었지만 배를 발로 차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엔 임신부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며 십자 포화를 맞았다. 이른바 '채선당 사건'이다.

    ▶그 무렵 '국물녀 사건'도 터졌다. 어느 여성이 '여덟 살 아들이 음식점에서 50대 여성과 부딪히면서 된장 국물에 데어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아들 데리고 화장실 간 사이 가해자가 사라졌다"는 그의 주장에 네티즌들이 또 격분했다. '국물녀 수배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일부 사실이 달랐다. 경찰이 확인한 CCTV엔 아이가 뛰어와 된장국 그릇을 손에 든 여성과 부딪힌 뒤 곧바로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50대 여성이 국물에 덴 아이를 놔두고 자리를 뜬 게 아니었던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지난 11일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한 시민의 글이 올라왔다. '건대역 근처 정류장에서 아이가 혼자 내리자 엄마가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으며 부탁했는데 240번 버스 기사가 운행을 계속했다'는 목격자 고발이었다. 글은 다음 역에서 울며 뛰어내리는 엄마를 향해 기사가 욕을 했다고도 했다. 그날 밤부터 조합 홈페이지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기사를 처벌하라'는 비난으로 도배됐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청원이 올라갔다. 인터넷엔 '240번 버스의 만행'이란 제목의 기사까지 떴다.

    ▶이번에도 반전의 계기는 버스 CCTV였다. 서울시가 확인했더니 버스 기사는 아이가 내린 정류장에서 16초간 출입문을 열었다가 출발했고 아이 엄마가 뒤늦게 하차를 요구했을 때는 이미 2차로에 진입한 상태라 정차가 어려웠다고 한다. 기사의 욕설도 없었다고 한다. 기사는 버스가 출발한 지 10초 뒤 좌우를 두리번거리는데 그때야 이 문제를 안 것으로 보인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부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고발이 대중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애꿎은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자극적인 먹잇감만 생기면 집단최면 걸린 듯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해대는 것이 사이버 세상의 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발달로 이제 누구나 다 자기 매체를 갖게 된 시대다.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글 하나가 누군가를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