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34] 선기원포 (先期遠布)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 2017.09.14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594년 류성룡(柳成龍)이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를 올렸다. 적군을 막아 지키는 방책을 열 가지로 논한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척후(斥候)와 요망((瞭望)의 효율적 운용을 첫 번째로 꼽았다. 적병의 동향을 미리 파악해 선제적 준비를 하려면 선기(先期)와 원포(遠布)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적어도 전투 5일 전에 멀리 적진 200리 지점까지 척후를 보내 적의 동정을 파악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군대에 이것이 없으면 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과 같다고 썼다.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이일(李鎰)이 상주를 지켰다. 적병이 코앞에 왔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접전 하루 전 개령현(開寧縣) 사람이 적이 코앞에 와있다고 알렸다. 군대를 동요시킨다며 이일이 그의 목을 베게 했다. 그가 부르짖었다. "내일 아침까지 적이 안 오면 그때 내 목을 베시오." 이일은 들은 체도 않았다. 그의 군대는 이튿날 궤멸당했다.

    신립(申砬)이 4월 26일 충주에 도착했을 때 적은 이미 조령을 넘은 상태였다. 군관 한 사람이 상황을 보고하자, 신립은 군사를 미혹하게 한다며 그의 목을 베어 조리돌렸다. 28일에도 그는 적병이 상주를 아직 떠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왜적은 6~7리 거리 밖에 이미 가득 차 있던 상태였다. 바로 그날 탄금대 전투에서 군대가 전멸당했다.

    장수들은 큰소리만 뻥뻥 치며 무턱대고 움직이다가 갑작스레 적과 마주치면 놀라 두려워 도망치기 바빠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다. 기일에 앞서 먼 곳까지 척후를 놓아 적의 동태를 손금 보듯 파악해 복병을 펼쳐두고 기다려도 이길까 말까 한데, 미리 알려 줘도 동요를 막는다며 알려준 사람의 목을 베고 큰소리만 치다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류성룡은 이런 일이 똑같이 되풀이될까 봐 아홉 조목을 더해 '전수기의십책'을 올렸고, 다산은 훗날 '아방비어고(我邦備禦考)'를 엮으면서 이 글을 앞에 넣었다. 류성룡이 말했다. "앞 수레가 부서진 줄 알면서도 바퀴를 고칠 줄 모른다면 진실로 뒤집히고 부서지는 길이다(夫知前車之旣敗, 而尙不知改轍, 則是固覆敗之道也.)." 닥쳐서 허둥대면 늦다. 미리 보고 멀리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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