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12] 보르헤스 첫 시집에 가득했던 부친의 교정 흔적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입력 : 2017.09.14 03:1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자신의 운명이 읽고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낙원은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이라고 상상했고,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 사서로 시작해 훗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을 지냈다. 노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조차 책 읽어줄 사람을 구했다.

    보르헤스를 세계문학사에서는 거장으로 꼽지만 그는 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 모든 사람 중에 당신은 왜 하필 보르헤스가 되었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보르헤스가 된 게 놀랍고 부끄러워요. 다른 어떤 사람이 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자기 이름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아주 어색한 이름이라 싫어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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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기를 원하고, 완전히 잊히기를 소망했다. "나는 그 사람이라면 넌더리가 나요." 보르헤스의 도저한 자기부정은 그를 수행자로 보이게끔 한다. 그는 조그만 실수, 단 하나의 오류조차도 용납하기 힘들어했다. 그는 가끔 괴팍한 행동을 했다. 1925년에 출판한 책 '심문'이 마음이 들지 않아 그 책을 사들여 불태웠다. 그 책은 자기의 실수였고, 그 실수가 세상에 남아 있는 걸 못 견뎠다.

    첫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는 1923년에 나왔는데, 첫 시집을 아버지에게 드리며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얘야,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극복하면서 나아가는 거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지만 보르헤스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 중에서 그 시집이 나왔다. 시집의 모든 시에 아버지가 교정을 본 내용이 가득했다.

    보르헤스는 '보르헤스 전집'을 꾸릴 때 아버지의 교정본을 그대로 사용했다.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지요." 보르헤스가 오류투성이인 첫 시집을 태우지 않고 살려둔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 그 첫 시집은 백치가 읊어대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많은 물건 중 하나일 뿐이지만 질서 정연한 낙원, 나비의 꿈, 황금 사과, 구불구불한 미로의 계단, 긴 이동의 발자국을 품은 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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