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로 되찾은 분청사기 墓誌

    입력 : 2017.09.13 03:04

    日로 밀반출됐던 '이선제 묘지' 98년 本紙가 반출경위 상세보도
    20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도대체 이 유물은 언제 어떻게 반출된 걸까…?' 2014년 10월, 일본 소재 우리 문화재의 실태를 조사하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 일본 사무소의 김성호 대리는 고민에 빠졌다. 한 일본 고미술상의 소개로 도쿄의 소장자 도도로키 다카시(等等力孝志)씨가 분청사기로 만든 조선시대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는 돌이나 도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진을 입수해 조사해 보니 세종대왕 때 사관과 집현전 부교리를 지낸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묘지였다. '고려사' 개찬과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호조참판을 거쳐 문종 때 예문관 제학에 이른 인물이었다. 이 '분청사기상감 이선제 묘지'(높이 28.7㎝, 폭 25.4㎝)는 분청사기에 상감기법으로 글씨를 새겨 백토를 채운 뒤 유약을 발라 구운 독특한 양식의 작품으로 사료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라 할 만했다.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돌아온‘분청사기상감 이선제 묘지’(왼쪽 사진)과 이 유물의 반출 사실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보도한 1998년 9월 2일 자 조선일보 기사.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돌아온‘분청사기상감 이선제 묘지’(왼쪽 사진)과 이 유물의 반출 사실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보도한 1998년 9월 2일 자 조선일보 기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그런데 문화재를 되찾는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반출 경위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시점에 광주(光州)의 이선제 묘에서 도굴된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는 어느 자료에도 나오지 않았다. 온갖 문서를 검색하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협력지원팀장은 한 신문 기사 앞에서 무릎을 쳤다. "바로 이거다!" 그것은 1998년 9월 2일자 조선일보 22면(사회면)에 실린 '눈먼 김포세관'이라는 검찰발(發) 기사였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밀매단이 1998년 5월 '이선제 묘지'를 일본으로 빼돌리려 했는데, 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의 양맹준(65·전 부산시립박물관장)·최춘욱(57) 감정위원이 이 유물의 가치를 알아봤다. 양 감정위원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물건은 못 나간다'며 반출을 막았고, 최 감정위원은 묘지의 앞·뒷면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하나하나 써 넣은 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제보했다. 밀매단은 한 달 뒤 김포공항에서 감정을 거치지 않고 유물 밀반출에 성공했다. 이들은 귀국 후 검찰에 적발됐지만 이미 500만엔을 받고 일본 골동품상에 묘지를 팔아넘긴 뒤였다.

    강임산 팀장은 "조선일보 기사는 어떤 유물인지 자세히 보도하고 최 감정위원이 그린 그림까지 지면에 실었기 때문에 '이선제 묘지'의 불법 반출 경위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신문 기사의 PDF 파일을 출력해 2015년 12월 일본 후쿠오카로 갔다. 입원 중인 도도로키씨를 만나 돌려줄 것을 설득했다. '불법 반출 사실을 전혀 모르고 구입했다'고 말한 도도로키씨는 강 팀장이 내미는 신문 기사를 보고 놀라워하더니 마침내 기증 의사를 밝혔다.

    도도로키씨의 병세가 악화돼 지난해 12월 사망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달 24일 미망인 구니에(邦枝) 여사로부터 기증받은 '이선제 묘지'를 국내에 들여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묘지는 오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언론 공개되며, 2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 박물관 조선실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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