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담박하고도 농후하네" 文人들도 예찬한 버섯

  •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 2017.09.13 03:04

    [67] 송이

    송이버섯 사진
    /울진군청
    더위가 한풀 꺾이면 숲에는 찬 기운이 감돈다. 소나무 숲 속 땅 온도가 19~20도 정도로 떨어지면 송이(松 ) 버섯이 나기 시작한다. 송이는 소나무 뿌리 끝에 붙어 소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갓이 벌어지지 않아야 상품으로 치지만, 송이 가치의 기준이 되는 특유의 소나무 향은 갓이 펴지려는 시점부터 급격히 높아진다.

    송이는 송이(松茸), 송이(松耳), 송지(松芝), 송심(松蕈), 송균(松菌)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고려시대 문신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1260)에 '마침 송지(松芝·송이)를 바친 사람이 있어'라는 문구가 국내 송이 관련 첫 기록이다. 예부터 송이를 가을 선물로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송이는 오래전부터 가을 미식(美食)의 절대 강자였다. 안동 지역의 음식을 기록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1670년경)에는 만두나 대구 껍질 느르미, 잡채 등 다양한 요리에 송이가 사용되고 있다.

    조선 문인들은 송이 사랑을 시로 여럿 남겼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문집 '사가집'(四佳集)에서 '팔월(음력)이면 버섯 꽃이 눈처럼 환하게 피어라, 씹노라면 좋은 맛이 담박하고도 농후하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1610)은 '송이는 맛이 매우 향미하고, 송기(松氣)가 있다. 나무에서 나는 버섯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송이 산지에는 채취 열풍이 불었다. 요즘은 강원도 양양이나 경북 봉화가 송이 산지로 유명하나,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서울 남산 등 전국에서 채취됐다. 송이는 초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입맛을 사치하게 하는'(1936년 10월 4일 자 조선일보) 먹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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