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87] 관공서 상사들이 여직원 손톱도 검사… "청사 카펫 찢어진다" 하이힐 금지령

    입력 : 2017.09.13 03:11

    1966년 1월 24일 서울시청 각 부서의 과장들이 일손을 잠시 멈추고 부하 여직원들 손톱을 검사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이날 전 부서에 공문으로 시달된 '여직원들에 대한 사치 금지' 4개 항 중 '매니큐어 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지 항목엔 '빨간 스웨터 등 주위의 시선을 끄는 옷' '붉은 립스틱' '하이힐'도 들어 있었다. 과장급 공직자들이 고등학교 학생주임처럼 단속에 나섰고 여직원들은 울상이 됐다(경향신문 1966년 1월 25일 자). 서울시청만이 아니었다. 1960~1970년대에는 여러 관공서가 사치 배격이나 절약 등의 이유를 내세워 직원들의 옷차림, 몸단장까지 간섭했다. 남자 직원의 장발 등도 규제했지만 금지 조치 대부분은 여직원의 화려한 복장과 화장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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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스웨어’를 다룬 신문 기사에서‘바람직한 여직원의 의상’으로 소개된 투피스 차림 사진(매일경제 1975년 4월 5일 자)과 1970년대 관공서들의 여직원 복장 규제를 다룬 신문 기사.
    여직원의 몸단장 등에 대한 규제는 5·16 군사 쿠데타 직후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사회 개혁을 추진하던 국민운동본부는 1962년 9월 관청의 일부 여직원에 대해 "아이섀도나 립스틱 칠하고, 큰 소리를 내며 껌 씹고, 스커트 길이가 너무 짧아 목불인견의 수준"이라며 시정하라고 '엄중 경고'했다. 금지 의상 종류도 점점 상세하게 적시됐다. 1978년 여름 체신부 장관이 여직원들에게 "일절 착용 말라"고 불호령처럼 시달한 4대 금지 복장은 ▲빨간 옷 ▲노란 옷 ▲알록달록한 무늬의 옷 ▲소매가 짧은 노출형 복장이었다. 체신부는 "만약 복장 위반을 한 여직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장관에게 적발되면 즉각 주의를 요하는 구내방송을 하고 공문까지 만들어 공람시키겠다"며 살벌하게 경고했다(조선일보 1978년 8월 6일 자). 1968년 중앙청 근무 여직원들에게는 하이힐 금지령도 내려졌다. 복도를 활보할 때 하이힐 굽 소리가 공무에 방해될 뿐 아니라 '값비싼 카펫이 상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1979년 경남도청 여직원들에게 문서로 내려진 지시 사항 속에는 "머리칼은 얌전하게 빗고, 얼굴엔 로션 정도만 바를 것"이란 구절도 보인다.

    요즘 이런 식으로 규제했다가는 여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도 남을 일이지만, 거리에서 경관이 장발 청년을 붙잡아 머리칼을 자르던 시대였으니 제대로 항변 한번 내놓지 못했다. 여직원들은 저항하기는커녕 결의대회를 열어 '근무 중 하이힐 신지 말자' '짙은 화장하지 말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관가의 여직원 복장 단속은 민주화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1996년 건설교통부는 여직원들 복장을 기습 단속한 뒤 적발 내용을 회람을 통해 공지해 망신을 줬다. 이땐 화려한 옷뿐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 '롱부츠' '배낭을 등에 멘 차림'도 불량 복장에 추가됐다.

    이제 여직원 복장 규제 같은 일은 관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지만 금융계에선 가끔 이 문제로 논란이 일어난다. 몇 달 전엔 어느 은행이 여직원 치마 길이부터 구두 모양까지 시시콜콜 규제해 시끌시끌했다. 또 며칠 전 보도에 따르면 지역 농협이 고객 서비스 암행 평가를 하면서 여직원의 과한 화장, 머리 염색이나 액세서리, 네일 아트 여부 등을 점검했다가 논란이 일자 중지했다고 한다. 단속 항목은 50~60년 전과 대동소이했지만 여직원들은 옛 시절 여직원들이 아니었기에 강력하게 집단 반발해 대부분 철회시켰다고 한다. 그런 낡은 굴레를 21세기 한국 여성들이 묵묵히 참아낼 줄 알았다면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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