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풍경 그리는 의사

    입력 : 2017.09.12 03:05

    김정욱씨, 환자·병원 일상 그려 온라인서 인기… 에세이도 출간
    "그림 그리며 하루를 반성해요"

    김정욱씨
    /김정욱씨 제공
    삼성창원병원 신경외과에서 근무하는 4년 차 전공의 김정욱(32·사진)씨의 별명은 '그림 그리는 의사'다. 지난 4년 동안 만난 환자들과 자신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려 왔다. 그림 그리며 떠오른 짧은 생각도 함께 덧붙였다. 손바닥만 한 노트에 펜으로 스케치한 단출한 그림이었지만 온라인에서 유명해졌다. 이달 초 70여 점 그림을 묶어 '병원의 사생활'(글항아리)이라는 그림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다. 어릴 때부터 낙서하듯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다. 전공의 생활 초기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그림 그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한 환자를 보고 의사인 자신에게 그림으로 '경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응급실에서 호출이 와서 갔는데 병상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새까만 발이 눈에 들어왔어요. 조금 더럽다는 느낌이 들고, 저 사람은 얼마나 가난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환자가 느낄 고통보다 먼저요. 아, 그래도 내가 의사인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뇌종양에 걸린 10개월 아기의 무표정하고 맑은 얼굴을 그릴 때는 의사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70대 할머니의 공손하게 모은 손을 그리면서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겸손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김정욱씨의 그림
    빡빡한 생활에 짬을 내 꾸준히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늘 쪽잠을 자면서 일했어요. 낮 진료를 하는 동안엔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휴대폰에 짧게 한 줄 메모를 적어 놓고 그날 저녁 10시 넘어 당직을 서면서 노트에 초벌 그림을 그렸어요. 휴무일에 집에서 다시 수정하는 식으로 완성했습니다." 도화지에 수채화를 그리는 대신 노트와 펜을 쓴 이유는 완성도보다 "일주일에 그림 1개씩 꼭 그리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노인이 겪는 신경외과 질환을 주제로 그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온라인에 그림을 연재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부를 받고 모은 돈 전액을 노인 복지 기관에 전달할 생각이다. 곧 군 복무도 해야 한다. "군의관이 되어서도, 나중에 전문의가 되더라도 그림 그리는 일은 놓지 않을 겁니다. 제가 의사로서 고민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내년 말쯤엔 군대 버전 '병원의 사생활'도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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