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이쑤시개? 수백만 개 쌓았더니 예술"

    입력 : 2017.09.12 03:05

    [亞 첫 개인전 여는 타라 도너번]

    맥아더재단 '천재상' 수상
    빨대·단추 등 작은 재료 쌓아 反轉의 예술 만들어내는 작가

    내달 22일까지 페이스갤러리서울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말은 뉴욕 토종예술가인 타라 도너번(Donovan·48)에겐 통하지 않는다. 뻑적지근한 지적(知的) 허세 따위는 없다. 눈으로 보는 순간 1초도 안 돼 탄성이 터진다. 단추, 빨대, 이쑤시개, 핀, 종이컵 등 잡동사니들을 무지막지하게 쌓아 올려 만들어낸 거대 조형물은 그야말로 반전(反轉)의 감동! 그 단순한 파격으로 서른아홉이던 2008년 맥아더재단 '천재상'을 수상했다.

    타라 도너번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10월 22일까지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서울에서 열린다. 전시를 위해 서울에 온 도너번은 "6년 전 도쿄에서 그룹전을 할 땐 쓰나미가 덮치더니, 서울 전시에선 북한 핵폭탄 문제가 터졌다"며 싱긋 웃었다.

    벽면의 작품은 아이들 용수철 장난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조형물.
    타라 도너번은“보고 또 보고 생각하는 게 나의 습관”이라고 했다. 벽면의 작품은 아이들 용수철 장난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조형물. 용수철을 납작하게 눌러 이어붙였는데 흑백 드로잉처럼 보인다. /김지호 기자
    현대미술의 거장 척 클로스가 "혼성모방 일색인 현대미술에서 누구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작품을 하는 작가"로 극찬한 도너번은 눈여겨보는 재료부터 남다르다. 압정, 용수철, 빨대처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재미없는 물건이다. 도너번은 이걸 무한 반복해 쌓는 단순노동으로 예술을 일궈낸다.

    '이쑤시개 큐브'는 대표적이다.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다 실수로 이쑤시개 상자를 쏟았는데 이쑤시개들이 흩어지지 않고 상자 모양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수백만 개 이쑤시개를 접착제 한 방울 없이 거대한 큐브 형태로 쌓아 올린 이 작품은 2005년 무명의 도너번에게 '알렉산더 칼더상'을 안겼다.

    재료에 대한 탐구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대학원 학비와 작품 제작비를 벌기 위해 6년 넘게 식당 알바를 뛰어야 했던 가난한 미술학도의 눈엔 빨대와 종이컵, 플라스틱 막대도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200만개 빨대를 쌓아 올려 구현한 드넓은 운해(雲海)와 300만개 스티로폼 컵으로 묘사한 설경(雪景), 검은색 타르 종이 수백만 장을 비뚤배뚤 겹치고 쌓아 설치한 거대 암석의 장관 앞에서 관객들은 입을 딱 벌렸다.

    도너번의 대표작 '이쑤시개 큐브'.
    도너번의 대표작 '이쑤시개 큐브'. 가로·세로·높이 76.2㎝. /페이스갤러리
    도너번의 작품은 현대사회 소비문화를 비판하는 환경주의 예술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진 않아요. 아주 작은 물건들이 수천 개, 수만 개 모였을 때 어떤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걸 실험해봤을 뿐이죠. '이게 단추였어?' 하고 놀라는 관객들 모습만 봐도 행복합니다."서울 전시엔 카드를 활용한 신작도 선보였다. 가로로 쌓아 올렸던 종이카드를 이번엔 세로로 꽂아 손으로 그린 드로잉처럼 착시를 일으키게 한 작품이다. "미술을 공부하지 않은 분들도 단박에 느끼고 재미있어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한번은 제 작품을 배송해주던 트럭 기사분이 빨대 작품을 보고는 '세상에 태어나 이런 건 처음 본다'며 감동하셨죠. 휴일인 다음 날에도 오셔서 작품 설치를 도와주시더군요(웃음)."

    "천재냐?"는 질문엔 "예술가는 영감이 아니라, 앉아서 노동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내가 궁금한 걸 우직하게 파고들다 보면 자기만의 언어를 찾을 수 있지요. 작품으로 돈을 어떻게 벌까부터 생각했다면 이런 이상한 작품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하!" 070-7707-8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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