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

    입력 : 2017.09.12 03:15

    임민혁 정치부 차장
    임민혁 정치부 차장

    문재인 정부는 의미 있는 숫자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한(恨)을 풀어줄 기회를 가진 마지막 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현재 생존자는 35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91세. 가장 나이가 적은 할머니가 85세다. 올해 들어 5명이 세상을 떠났고, 그중 두 명은 최근 이틀 간격으로 눈을 감았다. 할머니들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언제든 비보(悲報)가 날아들 수 있다.

    '시간'은 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큰 제약 중 하나다. 지난 정부가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를 도출할 때도 협상가들은 "할머니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손에 닿는 결과를 안겨 드리려면 100%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절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유임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당시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가 "다 돌아가신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때 가서 일본에 뭘 요구합니까. 시간도 중요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소연할 때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었다고 믿는다. 사전에 피해자들과 충분한 교감을 못한 점 등은 문제이지만 12·28 합의의 모든 과정·결과를 싸잡아 '매국, 굴욕, 졸속'이라고 낙인 찍을 일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하상숙(향년 90세) 할머니의 발인식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여론이 위안부와 관련해 일본에 요구하는 것을 '10'이라고 할 때 단시간 내에 이를 다 받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본에 "법적 책임 인정하고, 이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총리가 진정성 있게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한에 "핵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정당하고 옳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이 0%라는 얘기다. '10'이 아니라 '7~8'이라도 받아내려면 국제 여론 조성 등을 통한 길고 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성패는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 대부분은 임기 초엔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발을 뺐다.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일본과 절충했다가 '매국노' 욕을 먹느니, "일본은 각성하라"고 외치며 미해결 상태로 두는 게 정치적으로 더 안전한 방법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과거와 달리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지금 정부는 '박근혜표 위안부 합의'를 '적폐 청산 대상 1순위'에 올려놓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합의에 '불가역적, 최종적 해결'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경위는 무엇이며, 누가 책임자인지 등을 가려내려 한다. 여기까지는 쉽다. "속 시원하다"는 여론의 박수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엔 여러 차례 약속한 대로 '문재인표 위안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야당일 때는 할머니들과 함께 눈물 흘리면 됐지만, 국정 운영을 책임졌다면 눈물을 닦아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 '희망 고문'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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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할머니 만나 눈물 슈뢰더 "책임의식 없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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