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 살리려면… 고 1 때부터 맞춤형 진로 교육해야"

    입력 : 2017.09.11 03:06

    일반고 회생시킬 방책 뭘까
    현장서 뛰는 교사 의견 들어보니
    외고·자사고 폐지 수순… 쏟아지는 일반고 정책에 관심 쏠려…

    교육부가 일반고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외국어고와 국제고, 자율형사립고의 입시를 일반고와 동시에 진행하겠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교육부 계획대로면 외고·국제고·자사고에 지원했다 떨어지는 학생은 '고입 재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교육계는 사실상 외고·국제고·자사고의 폐지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반대로, 일반고는 회생 기회를 맞았다. 후기고인 일반고는 그간 특목·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면서 학업 분위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일각에선 단순히 특목·자사고를 폐지한다고 일반고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일반고가 우수 인재를 제대로 가르칠 시스템을 갖췄겠느냐는 것이다. 일반고에 제대로 숨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에서 뛰는 일반고 교사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진로ㅣ조용하면 딴짓을…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따로 있어

    몰래 간식을 먹거나 소곤거린다. 조용하면 분명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중이다. 칠판에 집중하는 아이는 절반이 채 안 된다. 교사들은 일반고 수업 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일반고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학생과 취업을 원하는 학생, 목표 없이 등교하는 학생이 뒤섞여 있다. 교과 수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도 일괄적으로 책상 앞을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고 교사들이 첫손에 꼽는 일반고 살리기 방안은 '맞춤형 진로 교육 확대'다. 지난해까지 외부 기관과 연계한 직업 위탁 교육을 원하는 학생은 3학년 1학기가 될 때를 기다려야 했다. 올해 교육부는 2학년 2학기부터 직업 위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앞당겼다. 교사들은 "이것도 늦다"고 했다. 김용진 서울 동국대사범대부속여고 교사는 "대학 진학보다 취업에 관심 있는 일반고 학생들이 세 학기 동안 방치된다. 1학년 때부터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특성화고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직업 교육을 받고 싶어 특성화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아이들까지 일반고에 오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진학과 동시에 목표를 잃는다. 학생들 미래를 위해서라도 특성화고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유제숙 서울 한영고 교사는 "다양한 학생이 부대끼며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소통을 배우는 과정도 중요하다. 비슷한 학생끼리 완전히 분리해 교육하는 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교육부는 내년 고교 현장에 적용할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공통과목을 필수로 이수한 뒤, 적성에 따라 다양한 선택과목(일반·진로)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1학년 때 통합사회를 공통과목으로 이수하고, 지리에 관심 있는 학생은 2·3학년 때 일반 선택과목인 '세계지리'나 진로 선택과목인 '여행지리'를 추가로 수강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수능 체제·교사 수급·강의료·교실 문제 등이 겹쳐 당장은 선택과목 확대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간 꾸준히 이를 준비해온 일부 학교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 학교 간 차이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한 일반고 교사는 "우리 학교는 달라지는 게 거의 없다. 현재 중 3 학생들은 현 수능 체제대로 시험을 치러야 하므로 시간표도 기존과 같다"고 했다.

    맞춤형 교과 교육을 위해 교육부는 2022년쯤 고교학점제를 모든 고교에 도입할 계획도 세웠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시간표를 짜고 학점을 이수하는 제도다. 교사들은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선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가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같은 상대평가제하에서는 학생들이 수능 과목에 맞춰 수업을 듣거나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에만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쏠림현상'이다. 교사 수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경북의 한 일반고 교사는 "도서 지역엔 소수 학생이 택할 비인기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 교과목 선택이 교사 수급 상황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학생 완전 선택형 교육과정'을 2010년부터 운영한 서울 도봉고의 송현섭 교감은 "우리 학교처럼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고교학점제를 운용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대규모 학교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교과 교실이 필요한 등 시설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고 했다.

    일반고에 존재하는 배움 느린 학생도 놓쳐선 안 된다. 서울 강일고는 학력이 다소 저조한 아이들을 학년당 한 학급씩 총 20명 모아 주중과 주말에 야구·양궁·풍물 등 다채로운 비교과 활동을 체험하도록 한다. 최재일 강일고 교장은 "예전에 수업 분위기 망치는 아이로 불렸던 학생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지금은 어떤 활동이든 먼저 나서서 참여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 교육에 앞서 자존감 교육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일반고 학생들 사이엔 특목·자사고에 못 갔다는 패배의식이 전반에 퍼져 있다. 황병희 서울 경성고 교장은 "구체적 진로 교육을 제공하기에 앞서 자존감 교육을 해야 한다"며 "무력감을 떨친 후에야 무엇을 하고 싶은지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성고는 경쟁의 의미와 직업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면서 자존감을 향상하는 학생 상담 시스템을 갖추고, 교사 및 부모 교육까지 진행 중이다.



    대입ㅣ학종 확대하려면 '교사 신뢰' 확보부터

    교사들은 일반고를 살리는 대입 전형으로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꼽았다. 김혜남 교사는 "정시 중심이던 시절엔 '내신은 버리고 수능만 잡는다'는 생각으로 학교 수업을 무시하던 학생이 많았다. 지금은 학생부가 중요해지면서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교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대입 결과를 놓고 봤을 때도 지방이나 강북 일반고에선 학종을 활용해 진학하는 학생들이 점점 느는 추세다.

    최근 교육부는 사교육 유발 요소를 점검하고 불필요한 스펙 쌓기 경쟁을 없애 학종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학생부에 교내 활동만 기재 가능하므로 사교육 요소는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한다. 학종의 더 큰 과제는 교사의 신뢰성 확보다. 학종에서는 학생부 기록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기록자가 교사이므로 학생들은 교사의 역량과 선의(善意)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활동을 한 학생도 어느 교사가 기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받는다. 즉, 공정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고교 3학년 담임교사에 비해 1·2학년 담임교사의 대입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불만도 많다. 대학은 3년간의 학생부 기록을 살피므로 모든 학년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담임 한 번 잘못 만나면 대입은 망한다"는 말도 나온다. 김종우 서울 양재고 교사는 "교육청·교육부 연수 외에도 교내 동료 교사 연수를 확대해야 한다. 최신 진학 정보와 지도 경험을 나누면서 상담 능력을 키우고 학생 정보를 공유해야 풍부한 학생부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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