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베스트셀러 작가 된 文章 수리공… '적·의·것'만 빼도 좋은 문장된다

    입력 : 2017.09.09 03:02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펴낸 外注 교정자 김정선씨

    '적·의를 보이는 것·들'
    문장에 잡초나 자갈처럼 많이도 끼어 있어요 뽑아내고 골라내야

    문장 강의 때 뭘 가르치나
    보고서 쓸 땐 명사 위주로… 연애편지는 용언을 잘 써야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죠

    서울도서관에서 만난 김정선씨는 “딴생각 많이 하고 좀 덤벙대는 성격이었는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좋게 말하면 꼼꼼해졌고 사실은 소심해졌다”며 “외주 교정자는 직업상 쓸데없는 의심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서울도서관에서 만난 김정선씨는 “딴생각 많이 하고 좀 덤벙대는 성격이었는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좋게 말하면 꼼꼼해졌고 사실은 소심해졌다”며 “외주 교정자는 직업상 쓸데없는 의심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출판계 외주(外注) 교정자 김정선(51)씨가 지난해 펴낸 책이 3만2000부나 팔렸다. 제목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다. 출간 1년 안에 1만부 고지를 밟는 국내 저자가 100명이 되네 마네 하는 요즘 출판 시장에서는 '사건'이었다.

    "동사(動詞)는 음식으로 치면 육수나 양념에 해당한다. 제 몸을 풀어헤쳐 문장 전체에 스며들어서 글맛을 내기 때문이다. 육수나 양념과 마찬가지로 잘 쓰면 감칠맛까지 낼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맛은커녕 허기를 채우기도 어려워진다…."

    그가 2015년 낸 첫 책 '동사의 맛'에서 이 대목을 읽다 입맛을 다셨다. 남(저자·역자)이 쓴 원고만 다듬다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으니 '부사의 맛' '형용사의 맛'도 곧 출간되겠거니 지레짐작했다. 올해 세 번째 책 '소설의 첫 문장'을 펴냈고 글쓰기 강사로도 인기를 얻은 김정선씨는 뜻밖에도 교정·교열 일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책도 강의도 재미있는 '외도'였어요. 이제 그만 쓰려고요."

    '문장 수리공'이 되기까지

    김정선씨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기업체 입사가 잘 안 되자 1993년 잡지사 '한국인' 편집부에 들어갔다. 2년 반쯤 선배들 어깨너머로 교정·교열 일을 익히다 을유문화사로 옮겨 수작업으로 책 만드는 과정을 배웠다고 한다. "누군가 쓴 문장을 읽고 왜 그렇게 썼을까 생각하고 다시 써보는 게 일이자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어쩌다 외주 교정자가 되었나요?

    "출판사 그만두고 놀다 보니 돈이 떨어졌는데 후배가 등을 떠밀어 일을 맡았어요.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죠. 제가 본 교정·교열을 외부에서 점검했는데 실수가 새빨갛게 나왔어요. 이 일은 아니구나, 했는데 후배가 속된 말로 뻥을 친 겁니다."

    ―어떻게요?

    "저를 소설 습작하는 사람이라고 출판사들에 소개했어요. 문장을 수정해줬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일감이 들어온 거예요. 번역서를 주로 맡았는데 초반에는 인문서였고 최근엔 소설을 봅니다."

    ―교정·교열이란 뭔가요.

    "신문사엔 과거에 식자공(植字工)이 심는 활자가 있었잖아요. 거꾸로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게 들어가기도 하고. 그걸 고치는 걸 '교정(校正)', 문장 순서를 바꾸는 걸 '교열(校閱)'이라고 했대요. 요즘 출판에서는 맞춤법 보는 게 교정이고 문장 수정하는 게 교열입니다."

    ―원고 하나 보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300~350쪽 원고라면 대체로 초교는 일주일에서 열흘이요. 재교는 일주일 안쪽, 삼교는 더 짧아집니다. 책을 낼 시간에 쫓긴다면 더 빨라질 수도 있고요. 교정지가 저자한테 갔다 오는 것까지 감안하면 짧으면 한 달, 길면 1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몇 권이나 보시는지.

    "계산하기 어려워요. 저한테 일을 주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거나 제가 딴짓 안 하고 업무만 보는 게 아니니까요. 기다림도 이 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 사이에 다른 글 보면서 눈을 씻고 낯설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놓친 걸 볼 수 있고요."

    ―문학 쪽은 몇 문장만 봐도 저자(역자)의 호흡과 리듬이 읽히나요?

    "한창 까불 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고요. 10~20년 전엔 번역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어요. 교수가 일감을 맡아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주던 시절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거나 마부가 말에게 '이랴이랴' 해야 하는데 '여보시게' 했지요(웃음)."

    "좋은 문장은 '빼기'로 만들어져"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문장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그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표현들을 추려 보여준다. 재미있게 읽히도록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는 "교정·교열 배울 때 머릿속에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는 공식을 기억하고 다녔다"고 했다.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의존명사 '것'과 접미사 '―들'이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고 지적하셨지요. 마치 경찰이 단속해야 할 상습범 같더군요.

    "문장에 잡초나 자갈처럼 많이도 끼어 있어요. 잡초 뽑아내고 자갈 골라내듯 하도 빼다 보니 싸잡아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라고 불러요."

    ―간단한 예를 들어주신다면.

    "'사회적 현상'은 '사회 현상', '혁명적 사상'은 '혁명 사상', '국제적 관계'는 '국제 관계'로 쓰는 게 훨씬 깔끔해요.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의'도 마찬가지예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가 아니라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로 쓰는 편이 낫지요."

    ―의존명사 '것'은 왜 문제인가요?

    "대부분 쓸데없으니까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군살을 빼야죠. '인생이라는 것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가 아니라 '인생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입니다. 좋은 문장은 대체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져요."

    ―'들들들'만 눈에 띄는 글을 '재봉틀 원고'라 부른다는 대목을 읽으며 클클클 웃었어요.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에는 '―들'을 붙이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요.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들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는 문장이 있다면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기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로 고쳐 써야죠."

    ―어떤 책이든 저자는 머릿속에서 숱하게 문장을 궁굴린 데다 여러 번 읽어 고칠 게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교정·교열자는 정반대겠죠?

    "일단 의심을 하고 봅니다. 평균적인 독자를 상정해서 그 기준으로 모르는 게 나오면 물어보고 좀 더 쉽게 써달라 하고 아니면 수정해서 이건 어떠냐고 제안하지요. 교정지 위에서 저자(역자)와 대화하는 겁니다."

    ―김훈 소설 '칼의 노래'도 만졌다고요?

    "원고지에 연필로 눌러쓰는 분이잖아요. 교정·교열이라기보다는 컴퓨터로 옮긴 활자가 맞는지 대조하는 일을 했어요. 문장이 독특했는데 동인문학상도 받고 그렇게 유명해질 줄은 몰랐죠. 수정한 게 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게 사실 저희 직업입니다."

    ―환자의 병을 함구하는 의사처럼요?

    "네. 물어보진 않았지만 필자들의 요구도 '다 보고 나면 제발 잊어라'일 거예요. 치부일 수도 있으니까. 뒷얘기를 책으로 내면 상도에 어긋나죠(웃음). 한 가지는 분명해요."

    ―뭐죠?

    "어떤 사람 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싶으면, 그 글은 결코 자연스럽게 쓴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이게끔 인위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며 공들여 매만진 거죠."

    저자가 되고 보니

    직업병이랄까. 별문제 없는 문장을 읽고 또 읽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곤 했단다. 그는 "몇 해 전 안구건조증으로 교정·교열 일을 좀 줄였다. 요즘엔 순수하게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했다.

    ―흔히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하는데, 저자가 되고 보니 어떤가요?

    "'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동안 나쁜 짓 많이 했구나' 깨달았어요(웃음). 제 실수를 수정해주면 고맙긴 하지만 글에 깐죽거린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부사의 맛' '형용사의 맛'도 쓰나요?

    "역량이 안 됩니다. '동사의 맛'은 사실 활용형 때문에 쓴 거예요. 한글 문장은 95% 이상이 용언(서술어 기능을 하는 동사나 형용사)으로 끝나잖아요. 동사의 활용형은 사전에도 잘 안 나와서 정리해두면 쓸모가 있겠다 싶었어요. 강의를 해보니 사람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건 역시 용언이더라고요."

    ―'내 문장 속 군살 빼기' 강의도 많이 하셨는데 어떤 분들이 수강했나요?

    "대부분 직장인들이었어요. 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싶었죠. 메일 보내고 SNS로 홍보도 하려면 글을 써야 하잖아요. 단군 이래 지금이 꼭 독서 형태는 아니어도 한글로 쓴 문장을 가장 많이 읽고 쓰는 시대 같아요."

    ―어떻게 가르치나요?

    "보고서는 명사 위주로 쓰라고 해요. 상사가 보고서 쓴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반면 연애편지라면 내용은 보나마나 '아이 러브 유'겠지요. 따라서 용언을 잘 써서 상대를 감동시켜야 합니다. 교정 일을 하다 보니 의성어·의태어는 애저녁에 없어졌고 사람들이 점점 부사를 안 쓴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어떤 부사가 없어지고 있나요?

    "요즘엔 '짐짓' '무릇' '사뭇'이 사라지는 중이에요. '몹시'나 '매우'는 안 쓰고 '너무'만 너무 쓰고 있고요. 동사 표현도 단조로워집니다. 1990년대만 해도 '(입을) 가시다'와 '(그릇을) 부시다'는 소설 말고 일반 산문에서도 썼는데 지금은 '씻다'로 뭉뚱그려지는 경향이 강해요. 그렇게 붙박이 용언 하나만 쓰면 언어가 다채로움을 잃게 됩니다."

    ―이제 전업 작가를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눈이 안 좋아 쉴 때 출간 의뢰를 받은 거였어요. 제 깜냥으로 쓸 수 있는 책은 다 쓴 것 같아요. 더 욕심부릴 건 없죠."

    책마다 판권 페이지가 있다. 저자·역자·편집자·디자이너가 누군지 밝히지만 교정자는 안 나온다. 김정선씨에게 일할 때 철칙이 있는지 묻자 "저자나 역자를 모른 채 일하려 하고, 끝나면 애정 두지 않고 빠져나온다"고 답했다. '문장 수리공'은 책에 흔적이 드러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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