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조동진과 마광수

    입력 : 2017.09.09 03:02

    [마감날 문득]

    최근 각각의 이유로 세상을 등진 음악가 조동진과 문학가 마광수는 많이 닮았고 또 많이 다르다. 둘 다 자의든 타의든 언더그라운드를 고집했고 소수의 열광과 다수의 외면을 받았다는 점이 같다. 한 사람은 외롭지만 평탄하게 살다가 병을 얻어 하직했고 다른 사람은 해직과 소송과 왕따를 두루 겪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다르다.

    두 사람이 완벽하게 같은 점은, 있는 힘껏 나직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의 공연을 보면 온 힘을 다해 피아니시모로 건반을 건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가장 작은 소리를 내기 위해 최대한의 근력을 쓴다. 그것이 청마가 읊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시끄러운 것들은 땅 밑에서 요란하지만 깃발은 높은 곳에서 조용히 사람 마음을 흔든다.

    조동진 노래 '제비꽃'은 어떤 여인을 '머리엔 제비꽃'을 꽂았을 때와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을 때, 그리고 '창 너머 먼 눈길'을 줄 때, 그렇게 세 번 만난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각 절의 후렴은 "음―음―음―음―" 하는 허밍이다. 이 노래가 하고 싶은 말은 전부 "음―음―음―음―"에 들어 있다. 조동진은 끝내 뭘 말하려고 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떠났다.

    반면 마광수 시는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천당은 너무 밝대/…/ 밤이 없대/…/ 달밤의 섹스도 없겠지" 또는 "어머니, 저는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라고 말한다. 마광수는 하고픈 말을 모두 작품 속에 쏟았고 그 대가로 혹독한 인민재판정에서 살았다. 조동진은 하고픈 말을 모두 허밍 속에 묻어 구설(口舌)에 빌미를 주지 않았다. 둘 다 작은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택한 예술 형식이 달랐을 뿐이다.

    서글픈 것은 두 사람 생전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부고(訃告)에 유난히 열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다. 두 사람 모두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매스컴은 이들의 부고가 유일하게 가치 있는 뉴스인 양 호들갑 떨었다. 조동진 노래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를 다시 들어본다. "새벽별 창 너머/ 아직 타오르니/ 더딘 아침 해는/ 어디쯤 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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