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국운 바꾼 치산녹화의 상징…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입장료 유감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 2017.09.09 03:02

    [김두규의 國運風水]

    고건 전 총리가 전남도지사 시절 조성한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입장료를 받기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두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선가(禪家)에 오랜 화두로 전해지지만, 풍수에서도 산과 물은 화두이다. '산주인정 수주재(山主人丁 水主財)'라는 말이 있다.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 물은 재물을 낳는다'는 뜻이다.

    모든 산이 다 그렇지는 않다. 민둥산[童山]은 초목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돌산[石山]은 흙 한 줌 제 몸에 실어주지 못하게 한다. 당연히 그 계곡에 물이 흐르지 못한다. 인물도 재물도 나올 수 없는 땅이다. 지금 북한의 산과 물을 보면 그 운명을 알 수 있다. 산은 민둥산이요 개울은 말라 있다. 재물과 인물 나오기가 어렵다. 산도 물도 말라 있으니 성정은 강퍅해질 것이다. 핵무기 수천기를 보유했던 소련이 1990년대 초 해체된 것도 결국 '항산(恒産·먹고사는 일)'이 문제였다. 핵무기가 나라를 지켜주지 못한다.

    행정의 달인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거명된 고건 전 총리 이야기다. 현재 그는 북한 산림 복원 지원 사업을 위해 '아시아녹화기구'를 만들어 북한에 양묘와 조림 사업을 하고 있으나 최근 남북 경색 때문에 소강상태다. 왜 고건 전 총리는 북한 산림 복원에 관심을 기울일까?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은 치산녹화를 큰 국정 과제로 삼았다. 6·25 전쟁으로 산들이 불타버리고 이후 땔감으로 솔잎 하나까지 빗자루로 쓸어다 때던 시절이었다. 산에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큰물이 나면 산은 물을 품지 못하고 그대로 흘려보내 산사태와 물난리가 해마다 반복되었다.

    박 전 대통령의 치산녹화 사업에 실무를 맡은 이가 내무부 고건 과장이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하며 산림 복원을 추진했다. 해박한 산림 지식과 안목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조경·산림·도시계획 등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때 만난 이들이 오휘영·양병이 등 현 조경학계의 원로 교수들이다. 치산녹화와 땔감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곧 19공탄 연탄이 전성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남한은 1970년대 산림녹화 기틀을 잡았다. 풍수적으로 국운이 바뀐 것은 치산치수가 이뤄진 이즈음이다.

    능력을 인정받은 고건은 1975년 전남도지사로 임명된다. 37세 최연소 도지사였다. 이곳에서 3년 넘게 도지사직을 수행한 흔적 가운데 하나가 전남 담양 명물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이곳에 메타세쿼이아가 심겨 명물이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고 지사가 이 수종을 좋아했다. 속성수이며 위로 쑥쑥 잘 자라는 모습이 좋았던지, 이후 서울시장직을 수행할 때도 메타세쿼이아를 곳곳에 심었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국도는 비포장인 데다가 주변 논과 높낮이에 차이가 없었다. 눈이 오면 도로와 논과 구별되지 않았다. 그때 메타세쿼이아가 표지목 역할을 해주었다. 또 메타세쿼이아는 물에 강하다. 그래서 한자명이 수삼(水杉)이다. 논과 도로 사이 농수로 물이 메타세쿼이아를 잘 자라게 했다.

    얼마 전부터 담양군이 이 길 입장료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근처 순창에 집이 있는 필자는 가끔 담양 관방제림(官防堤林)을 찾는다. 메타세쿼이아길보다 더 걷기 좋은 데다가 국숫집들이 즐비하다. 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메타세쿼이아길을 지나 지근의 석당간과 석층탑을 둘러보고 순창행 버스를 탄다. 메타세쿼이아길엔 입장료 징수 이후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최근 순창군도 이웃 담양군과 공조해 메타세쿼이아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10~20년 후 이곳도 입장료를 징수할까? '가지 않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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