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입에서 늘 화약 냄새 풍겨야"… 낯설고 살벌한 '북한식 말폭탄'

    입력 : 2017.09.09 03:02 | 수정 : 2017.09.09 06:36

    섬뜩한 욕설·협박 누가 왜 만드나

    '두 놈의 영국 기자 나부랭이들이 써낸 모략 도서 내용을 가지고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엄중히 모독하는 특대형 범죄를 감행했다… 공화국 형법에 따라 극형에 처한다…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즉시 집행될 것."(8월 31일 북한 중앙재판소 대변인 담화)

    '미국을 믿고 무용지물인 사드에 기대를 걸며 설쳐댄다면 비참한 개죽음밖에 차례질(얻을) 것이 없다.'(9월 4일 노동신문)

    최근 북한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비방·협박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강화하는 동시에 말폭탄 수위도 점점 높이고 있다. 핵 공격을 언급하며 한국을 협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최근 그 선전·선동에서는 낯설면서도 섬뜩한 협박이 진하게 풍긴다. 이 살벌한 문장들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선전·선동에서 화약 냄새 풍겨야"

    북한은 '남조선 혁명'이라는 대남전략 노선을 토대로 대남 선전·선동과 비방을 계속해 왔다. 조선노동당 정무국(김정은 이전에는 비서국)과 국가 최고기구인 국무위원회에서 선전·선동 기본방침과 과제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당·정·군 차원에서 각각 역할에 맞는 내용을 작성해 전파한다.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선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 TV를 통해 비방 성명과 기사 등을 내보낸다.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선 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등 산하 기구 이름으로, 국무위 소속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조평통 및 민족화해협의회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군의 경우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산하 적공국(敵工局·일명 563부대)에서 대남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을 담당하고, 정찰총국에서 대남사이버전을 벌인다. 통일전선부 출신의 탈북민 장철현씨는 "대남 선전·선동 업무는 북한 최고 명문대학인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형직 사범대학 어문학부 출신이 주로 선발된다"고 했다. 학교장이 문장력과 학교 성적이 좋은 학생을 추천하면 당에서 사상 검토와 가정환경 조사를 거쳐 뽑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선전·선동부에서 일했던 김정일은 대남 선전·선동을 특히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조선중앙TV 아나운서들에게 "입에서 항상 화약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북한 아나운서인 74세 리춘희다. 김정일 총애를 받은 리춘희는 1994년 김일성 사망, 2006년 1차 핵실험,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알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을 발표한 이후 한때 방송에 나오지 않아 은퇴설이 나왔지만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 방송을 하면서 재등장했다. 이후 5,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 중대발표가 있을 때마다 방송에 나오고 있다. 한 고위 탈북민은 "북한 방송원(아나운서)은 뉴스에 환희, 분노, 슬픔을 표정과 어투, 목소리로 함께 전달하도록 훈련받는다"며 "리춘희는 대남 선전·선동 분야에서 김씨 일가 대(代)를 이어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죽탕치다" "각을 뜨다" 등 낯선 욕설

    북한말을 연구한 서울대 이현복 명예교수(언어학과)는 "북한 비방 성명은 교양 없고 때로는 우습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무서운 내용일 때가 많다"고 했다. 대남 비방에는 북한 욕이 자주 나온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북한 표준말인 문화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대한민국과 일본, 미국 등을 비난할 때는 예외다. 대남 비방에 단골로 등장하는 '죽탕치다'라는 표현은 '쳐서 몰골을 볼품없이 만들다'라는 뜻으로, 북한에선 가장 심한 욕에 속해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쑥대밭을 만들겠다'의 경우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뜻으로 이 역시 북한에선 잘 쓰지 않는 심한 욕이다. '각을 뜨다'의 경우 사지를 자른다는 의미이다.

    북한 비방 성명에는 '앉을 자리, 설 자리도 모르고 헤덤비는 무지한 짓거리' '천벌이 내린 듯 기절초풍하였고' '어리석은 잠꼬대' 등 우리 공식 성명에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많다. 이현복 명예교수는 "북한은 공식 문서에서도 문어체 대신 구어체를 자주 사용한다"며 "선전·선동의 경우 특히 북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어휘를 골라 쓴다"고 했다. 한 탈북민은 "북한 문학에선 소설 '임꺽정'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사실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다"며 "이것이 북한의 대남 비방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선군(先軍)정치 영향을 받아 군사 용어가 자주 나오는 것도 특색이다.

    이 같은 비방 성명은 북한 아나운서가 읽었을 때 효과가 커진다. 높은 억양으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면서, 절규하듯 격앙되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김정일은 '방송원 화술'이라는 교본을 통해 "방송원들의 말은 대중을 일깨우는 돌격 나팔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대통령 악담만 수십 가지

    북한의 대남 비방 수위는 대한민국 정권에 따라 변해왔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표현으로 가늠할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파쇼도당, 괴뢰도당, 부정부패 왕초, 역도, 협잡배 등 수식어를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정치매춘부, 정치협잡배, 사대매국노, 민족반역자, 문민역도, 문민괴수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파쇼광신자, 괴뢰통치배, 남조선 집권배로 비방하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조선 집권자로 순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직접 이름을 거명하며 비난하는 걸 자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북한은 비방을 재개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강도가 세졌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괴뢰 역도, 정신병자, 불구대천의 원수, 리명박 쥐○○, 2MB(메가바이트), 정치적 저능아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청와대 암○, 악근혜, 악담을 퍼뜨리는 아낙네, 온 국민을 다 잡아먹을 마귀○이라고 했다. 한승호·이수원 북한학 박사는 '김정은 시대의 대남비방 분석' 논문에서 "김정은은 정치적으로 등장하기 위한 준비가 김정일에 비해 단시일에 이루어진 만큼 권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며 "강력한 대남 비방을 통해 주민들에게 '최고존엄'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을 자극한 것"이라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각 기관이 충성경쟁 하듯 앞다퉈 대남 비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중앙재판소(최고 재판소에 해당)는 지난달 31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본지와 동아일보 사장, 특정 기자에 대해 "극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신문에서 영국 특파원이 쓴 책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소개한 게 이유였다. 대남 기구나 관제 언론이 아닌 중앙재판소가 협박에 동원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지난 1일에는 조선기자동맹 중앙위원회에서 대변인 성명을 내고 "추악한 괴뢰매문가들의 반공화국 모략망동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맡으면서 북한의 경쟁식 대남비방이 강화됐다는 의견도 있다. 김여정 부부장 임명 이후 '북한 괴벨스(나치 선전 담당)'로 불리는 김기남 선전선동부장과 리재일 제1부부장이 지방 협동 농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혁명화 교육'을 받고 복귀하기도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일 때는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서서히 비방 수위를 높였다면 김정은은 곧바로 최고 수준의 비방을 하는 것도 특징"이라고 했다. 북한의 대남비방은 주체와 형식, 내용으로 분류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노동신문에서 논평을 쓰거나 외곽 단체 명의로 성명을 내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당 공식기구 관계자가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비방하는 것이며, 이후 공식기구에서 대변인 담화나 성명 등을 발표한다. 이 기구 역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터 국방위원회까지 서서히 올라가고 이에 따라 비방 수위도 높이는 게 김정일 스타일이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최고 기구 수준에서 비방하고 나머지 기구들이 따라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동열 원장은 "우리 정부나 언론이 북한을 비판하면 김정일 정권은 2~3일 후 이에 맞대응하곤 했는데 김정은 정권은 반나절이나 하루 만에 반응한다"면서 "김정은의 급한 성격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에는 '패거리'가 고작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은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 이후 특히 미국에 대한 협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달 14일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일단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29일 비행거리 2700㎞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한 뒤 작전 계획을 공개하고 실제 행동에 옮긴 건 처음이다. 북한은 그러나 이처럼 미국을 위협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트럼프패' 이상의 직접적인 비판은 삼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도 실명 언급은 하지 않고 '현 집권자' '남조선집권자'로 지칭하고 있다. 향후 협상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은 "결국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으려 할 것"이라며 "만약 이렇게 되면 한국은 북한 핵 협박에 24시간 노출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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