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은 '좋아지려고' 있는 것이죠

    입력 : 2017.09.08 03:04

    범일 스님이 양평 서종사 대웅전 기둥에 쓴 한글 주련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사찰은 ‘대웅전’ 현판도 한글, ‘생각대로’ ‘말이 씨가 된다’ 등의 주련도 한글로 썼다.
    범일 스님이 양평 서종사 대웅전 기둥에 쓴 한글 주련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사찰은 ‘대웅전’ 현판도 한글, ‘생각대로’ ‘말이 씨가 된다’ 등의 주련도 한글로 썼다. /김한수 기자
    '울긋불긋 꽃대궐'을 상상하고 찾아갔다. 책 때문이다. 경기 양평 화야산 중턱 서종사 범일(60) 스님이 최근 펴낸 '통과통과'(불광출판사). 2001년 서종사를 창건하고 인터넷카페 '조아질라고'(joaj ilago.org)를 운영하는 스님이 그동안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 105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엔 먹때왈, 부겐베리아, 한련화, 금꿩의다리 등 일반인들은 잘 들어보지 못한 꽃과 나무가 40여 가지 등장한다. 막상 가보니 경내 곳곳에 나팔꽃, 능소화, 코스모스, 무궁화가 피어있긴 했지만 식물원만큼은 아니었다. 소감을 이야기하자 스님은 "관심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뜰에 핀 꽃과 나무와의 인연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스님에겐 꽃과 나무가 화두(話頭)이고, 법문인 듯했다.

    전북 고창 출신인 스님은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들판의 꽃을 옮겨와 초등학생 시절 집 안에 '2단 화단'을 만들었다. 꽃, 나무는 그에게 삶과 죽음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였다. 1982년 범어사로 출가한 그는 해인사 선방에서 성철 스님의 호통을 들으며 '무(無)'자 화두를 받았고 청화 스님, 진제 스님을 모시고 수행했다. 2001년 '혼자 살면서 수행하려' 작은 토굴 서종사를 창건했다.

    스님이 꽃 이야기만 하려고 책을 낸 것은 아니다. 꽃은 방편, 현대인들에게 부처님 법(진리)을 조금이라도 쉽게 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스님의 어떤 글은 선시(禪詩)나 일본 하이쿠처럼 보인다. '하루 사이에 마당 앞 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하루 사이에 어찌 이렇게 다 떨어질 수가 있을까요?/ 하루는/ 참으로 긴 시간이지만/ 찰나이기도 합니다.' '귀는 두 개이면서도 막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고/ 입은 하나이면서도 닫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책을 관통하는 것은 그의 모토인 '조아질라고', 즉 낙관과 긍정이다. "모든 어려움은 다 '좋아지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모든 일에는 클라이맥스와 바닥이 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 때 기도해보세요. '더 심하게 오라'고요. 어느 순간 바닥을 치고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물론 낙관엔 조건이 따른다. 하심(下心) 즉 겸손해야 하고, 말이 씨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며, 한결같이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님은 이런 내용을 대웅전 기둥에 한글로 써붙여 놓았다.

    범일 스님은 지난 6월 부산의 천년 고찰 운수사 주지로 부임해 부산과 양평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는 "처음 서종사에 터 잡았을 때 잠실서 1시간 걸리던 거리가 경춘고속도로 뚫리고 40분으로 줄었고, 운수사 주지 맡아 부산을 왕복하려니 마침 수서역 SRT가 개통돼 엄청나게 편리해졌다"며 "세상사는 꾸준히 준비하고 기다리면 다 좋아지게 돼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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