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무책임한 말의 盛饌이 우리를 마비시켰다

    입력 : 2017.09.08 03:17

    "국가 이익에는 우리가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포함돼
    지금 안녕하지 못하고 심한 스트레스 받는 상황, 국익이 몹시 침해받은 것"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2013년 초, '3차 북 핵실험'이 있었다. 신문에만 톱뉴스였지 우리 일상은 평온했다. 코스피 주가의 등락도 거의 없었다. 그런 시점에 정몽준 의원이 '핵(核)무장론'을 꺼냈다. 이웃집 깡패가 '최신형 기관총'을 구입했는데 돌멩이 하나 들고 집을 지킨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핵무장한 북한과 과연 평화 공존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로까지 나온 정치인이 강경 보수의 정서에 올라탄 걸로 그때는 치부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4, 5차 북 핵실험이 더 이어졌다. 북에서 또 실험하나 보다. 그럴 때마다 나온 북핵 대책이라는 게 "아직 소량화·경량화한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하진 못할 것"이라는 평가였다. 북한이 핵무기 완성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우리 정부는 "북이 핵무기를 만드는 의도가 협상용이냐, 아니냐"는 논의를 계속했다. 이번 '6차 북 핵실험'에 직면해서도 그 버릇 어디 안 가고 "문 대통령이 말하는 '레드라인'을 아직 안 넘었다"를 따졌다. 다들 입담 좋은 방관자적 논평가였다. 심지어 그전의 어떤 국방장관은 "도발 징후만 보여도 핵 실험장과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하고 지휘부도 원점 타격해버리겠다"고 장담했다. 무책임한 말의 성찬(盛饌)이 우리를 마비시켰다.

    북핵 위기는 25년 전부터 시작됐다. 역대 정권마다 북핵 실체를 직시하지 않고 우리 쪽으로 좋게 해석했다. 북한이 핵 능력을 갖추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각성하진 않았다. 명백한 진실은 북한이 가공할 6차 핵실험을 할 때까지 우리는 앉아서 논의만 하면서 기다려 왔다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우리에게 더욱더 불리해져 왔다는 점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8월30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 방송 화면. /뉴시스
    보수 진영에서는 문 대통령의 '안보 불안'을 비판하지만, 사드 문제를 빼면 그가 현 상황을 어지럽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의 불운(不運)은 김정은이 배려 없이 미사일을 쏘아대고 핵실험을 한 데 있다. 아마 보수 정권이었다 해도 북한이 이렇게 나오면 뾰족한 방도가 없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문 대통령은 여러 상념이 들었을 것이다. '같은 민족' '한반도 평화'를 중시한 그가 북한 원유(原油) 공급 중단 카드를 먼저 꺼냈다. 미국이 한때 그를 미심쩍게 보도록 만들었던 사드 배치 문제도 매듭지었다. 그럼에도 앞날에 안개가 자욱하다. 국내 지지자들은 '이니(문재인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지만,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이나 보수 진영은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어떤 대목은 인정하는 게 현명하다. 북한의 핵무기 질주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핵과 미사일이 완성될 때까지 어떤 제재와 압박도 감수하겠다는 게 북한이다. 국제사회의 더 강도 높은 제재나 트럼프의 '분노(憤怒)'도 결국은 막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주변의 외교 기술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 수밖에 없다"고 코치해왔다. 이들은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며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지금과 같은 갈등 증폭 상황은 일단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같은 목소리다. 하지만 대화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다. 그게 가능했으면 벌써 핵을 포기했을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로 협상을 포장해도 우리 머리 위에 핵이 놓여 있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과연 핵무장한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협상 상대는 해봐야 소용없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북의 핵 도발 시 미국의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무엇보다 사업가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의 생존을 깜깜이로 맡겨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선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는 '최고 국가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특수 상황 시 탈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국가 이익에는 우리가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 지금 우리는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 아침에 일어나 북핵을 떠올리면 스트레스가 심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가. 우리의 국익이 몹시 침해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문 대통령이 정말 나라를 위한 용기가 있다면 미국을 상대로 협상해야 한다. NPT 탈퇴와 핵무장론을 카드로 들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이뤄내야 한다. 핵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핵뿐이다. 핵 균형 없이는 우리 일상을 정상화할 방법이 어디에도 없다. 핵의 균형을 이뤄야 문 대통령이 그렇게 원하는 북한과의 정상적 대화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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