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인생 2막, 개도국에 간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입력 : 2017.09.06 03:16

    해외서 기술·경험 전하는 우리의 민간 외교 전사들
    "청년이건 장·노년이건 가장 안전한 것은 도전"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김경철(57) 전 한국교통연구원장은 필리핀에 가 있다. 필리핀 정부의 교통정책 수립과 급행버스체계(BRT) 자문역으로, 전기차 도입 필요성도 설득하고 있다. 그는 인도 캘커타 교통개혁에서는 IT 안내시스템을 도입해주었다. 이 밖에 네팔·인도네시아·베트남과 에티오피아·나이지리아·가나·코트디부아르에 가서도 교통정책 노하우를 전했다. 활동비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지원한다. 아들 결혼식 등을 제외하곤 귀국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 그는 "대부분 개도국에 선진국이 많이 다녀가 한국 위상은 별로 높지 않다"며 "그럴수록 우리 기업들이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근섭(68) 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본부장은 4년 전에 몽골 후레정보통신대학 토목과 교수로, 3년 전에는 베트남 교통부 도로총국 자문관으로 일했다. 작년부터는 코스타리카 도로관리청 자문관으로 현장과 강단에서 도로·교량 유지 관리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체재비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댄다. 그는 "처음에는 어서 가르치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이것도 먼저 인간적 친분이 중요함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우리 모토가 '빨리빨리'였다면, 코스타리카는 '쁘라비다(인생을 즐겁게)'입니다. 어딜 가도 싸우는 사람이 없고, 다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사하다'고 해요. 행복지수가 높지요. 가르친답시고 왔는데 오히려 제가 더 배웁니다."
    /조선일보 DB
    허억(57)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작년부터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주(州)에 어린이 교통사고 줄이기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17년간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에서 일한 경험을 살렸다. 한국은 특이하게도 교통사고 통계 가운데 어린이 분야만 선진국 수준이다. 그는 현지 대학과 연계해 안전 지도자 양성, 교재 개발 보급, 스쿨존 설치와 개선, 헬멧 같은 장구 보급, 법제 강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비용은 KOICA와 삼성전자가 준다. "여긴 아이들 교통사고 희생이 엄청난데 변변한 통계도 없어요. 경찰청도 교육청도 '한국이 나서주어 고맙다'고 하니 더 열심히 해야죠." 그는 1년간 8번이나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최근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공직 생활을 일단락한 뒤, 혹은 순수 민간인으로 개도국에 달려가 개발 전도사로 봉사하는 이가 주변에 의외로 많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을 뿐, 연인원 수천 명에 이른다. 서울시 고위직만 봐도 오세훈 전 시장이 2011년 퇴임 후 남미 페루와 중앙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수도(首都) 행정 조언을 해주었고, 이덕수 전 행정2부시장도 에콰도르 도시개발 자문역으로 있었다. 권영규 전 행정1부시장은 재작년 파라과이 노동부에 인적개발 정책자문역으로 갔다. 이 밖에 국토부, 해수부, 환경부 등 정부 출신도 수두룩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50대 중·후반으로,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를 위해 한창 일할 때다. 그럼에도 해외로 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민선 단체장들의 인사 만행(蠻行)으로 조기 퇴출당한 이가 적잖고, 세월호 사고 후 전관예우식 낙하산이 크게 줄고, 장기 불황에 SOC 투자마저 대폭 감축되면서 기업으로 갈 자리도 드물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시대를 탓하지 않고 도전에 나서기란 용기 없이는 힘든 일이다. 고급 민간 외교관인 이들의 노력이 쌓여 한국인과 기술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해외 인적 그물도 촘촘해질 것이다. 결국은 해외 아니면 먹고 살 길 없는 우리의 귀한 자산이 된다.

    이들의 공통적 주문이 있다. "우리 경험 자체가 '개도국 교과서'인 건 맞아요. 하지만 그중 중국·일본·유럽보다 우수한 점을 팔아야 하는데 공부하지 않으면 비교해 설명할 수 없어요. 영어 실력도 틈틈이 다지세요.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정부 예산 말고 국제기구 돈으로 일해봅시다. 젊은이건, 인생 2막 설계에 나서는 우리 같은 장·노년이건 가장 안전한 것은 도전하고 변화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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