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유럽 고소득 국가가 '여성징병제' 고심하는 이유는

    입력 : 2017.09.05 13:48 | 수정 : 2017.09.05 14:15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지난 30일 남성의 ‘독박군대’ 의무를 여성도 함께 나누게 해야한다는 ‘여성징병제’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일주일째인 5일 현재, 온라인 지지 서명은 10만건을 훌쩍 넘긴 상태다. ‘독박육아’에 견주는 용어, ‘독박군대’의 등장에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슴 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여성징병제 청원인은 “저출산이 심각해 병역자원이 크게 부족해졌다”며 “여성이 국방의무를 이행하면 군 가산점으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가 해결되고 남녀평등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체 차이 운운 하며 통과되지 않는다면 지금 시행되고 있는 여성 군 간부 모집, 경찰 모집도 중단되어야 하고 사회에 나가서 기업에서도 여성은 신체적으로 약해 제약을 크게 받으니 남녀 간 취업차별이 이루어져도 순리상 할 말이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헌재가 나열한 여성징병제 ‘안 될 이유’는 무엇?
    조선일보DB
    여성징병제 도입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족발집 씨육수’만큼이나 오래 묵은 논쟁거리다. 2007년 한 TV토론에서 당시 전원책 변호사(현 TV조선 앵커)가 남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를 상대로 ‘군 가산점제’ 공방을 벌이면서 “이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나”, “자도 자도 졸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곳이 군대”, “자꾸 여성분들은 군 복무가 안 된다거나 간호장교 쪽만 생각하는데, 제가 봤는데 요즘 여자도 특전사 많이 간다. 하는 거 봤는데 남자보다 잘 한다”같은 발언으로 인기를 끈 적도 있다. 전 변호사는 이날 토론을 계기로 ‘전거성(巨星)’이란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조선일보DB
    하지만 이런 일부 사례를 뺀다면, 법조계에선 그동안 대체로 ‘여성징병제’를 도입하면 ‘안 될 이유’가 ‘해도 될 이유’보다 훨씬 설득력있다고 받아들여져왔다. 지난 2009년에는 1981년생 카투사 김모씨, 2011년에는 1992년생 대학생 이모씨가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병역법 3조 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했었는데, 2010년과 2014년에 나왔던 재판 결과는 모두 ‘위헌 아님’이었다. <디테일추적>이 헌재 결정문을 살펴봤더니, 남자만 병역 의무를 지우는 게 ‘합헌’인 논리는 말 그대로 ‘차고 넘쳤다.’
    조선일보DB
    ▲월경·임신·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이유로 한 차별은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
    ▲일부 신체적으로 월등한 여성이 있다고 해도, 이들을 가려내기 위해 여성 개개인에 대한 전투적합성 신체 검사 체계를 도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
    ▲가임기 여성은 언제든 임신·출산·수유 등 대체 불가능한 부담을 질 가능성이 있고, 이런 기간동안 영내생활·군대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여성이 전시에 포로가 되는 경우 남자에 비해 성적 학대를 비롯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서 군사작전 투입에 부담이 크다는 점
    ▲여성 징병제 도입시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
    ▲여성에 대한 대체복무인력 수요·관리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기계적 형평성을 위해 여성징병제를 실시하면 국가의 예산·인력이 낭비된다는 점
    ▲징병제 채택하는 다른 국가들의 일반적 상황
    ▲도입시 남녀 간 성적 긴장관계에서 발생하는 군 기강해이 문제
    ▲여성이 병역 의무를 지게되더라도 남자의 병역 의무 내용·범위에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영향이나 이익이 없다는 점 등등등….

    물론 2010년에는 일부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국방의 의무 배분이 남자에게 대부분 치우쳐있고, 여자는 소극적 지원에 그치게 하면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국방의 의무 가운데 신체적 조건이나 능력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의무까지도 남자에게만 부과하면서 남녀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 취급하고 있고, 이러한 불합리성을 완화하려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다.” 2014년 재판에선 남자만 군대가는 게 위헌은 아닌데, 다만 “입법자가 병역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국민에 대해 ‘다른 형태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진지한 개선 노력을 해야한다”는 보충 의견을 낸 재판관이 있었다.

    북유럽 여성들이 군대 가겠다고 한 까닭은?
    징병제가 존재하는 70여개 나라 가운데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는 10개국 정도다. 헌재에 따르면 대표적인 나라인 중동 이스라엘도 남녀 복무기간 및 병역 거부 사유를 다르게 규정하는 한편, 여성의 전투 단위 근무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 밖에 북한, 아프리카 베냉·남수단 공화국·에리트레아·차드·코트디부아르·모잠비크, 남미 볼리비아·쿠바 같은 국가가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지우고 있다.

    주목할 만한 외국 사례는 최근 북유럽 국가에서 감지되는 변화들이다. 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이 최근 1~2년사이 여성징병제 도입을 결정했다. 스위스·오스트리아·덴마크에서도 여성 징병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여군. /IB타임스
    이유가 흥미롭다. 네덜란드 여성 국방장관인 제닌 헤니스 플라스하르트는 “여성을 군 징집 대상에 포함하려는 것은 당장 병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그동안 네덜란드 여성은 취업 시장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이 인정돼 징집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제 네덜란드에선 여성과 남성이 교육과 직업훈련에서 동등한 수준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군 문제에서도 남녀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나토 국가 중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 노르웨이 역시 군사적 목적보다는 양성 평등 실현 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주의좌파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남성도 가정에서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여성도 국방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여성 군복무 의무화 법안을 추진했다. 스웨덴 정부 또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징병제 법을 제정한 노르웨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남녀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평등하게 적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물론 이 나라들은 대체 복무 제도가 잘 갖춰져있다.
    노르웨이 여군. /AFP
    청와대에 올라 온 여성징병제 온라인 서명 접수는 오는 14일이면 끝난다. 한국사회에서 성(性)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영원한 ‘난제’를 청와대가 어떻게 답변할까. ‘독박 남녀’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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