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이중주… 최고의 문장 위해 격렬히 싸우죠"

    입력 : 2017.09.05 03:02

    [한국문학번역상 받는 부부 번역가 한유미·에르베 페조디에]

    '현의 노래' 佛語 번역본으로 수상, '수궁가' 등 번역한 판소리 전문가
    "한국 판소리·고전 문학 세계관… 셰익스피어에 견줘도 안 모자라"
    한국 민담·설화도 출간할 계획

    "이중주(二重奏)는 때로 격렬한 싸움입니다. 가장 적절한 어휘 하나를 위해 거칠게 맞붙죠."

    김훈 원작 소설 '현의 노래' 번역본(Le chant des cordes)으로 한국문학번역원 주관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로 결정된 20년차 부부 번역가 한유미(48)·에르베 페조디에(60)씨. 지난해 프랑스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나온 이 책은 "매우 명확하고 우아한 번역"이라는 평을 받았다. 6일 시상식 참석차 방한한 한씨 부부는 "김훈 특유의 '판소리 문법'이랄까, 진양조의 긴 호흡으로 나아가다 전쟁에 이르러 자진모리로 넘어가는 리듬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한국 판소리 전문가다. 2001년부터 '수궁가' 등의 대본 번역을 맡았고, 2013년부터 판소리축제 'K-Vox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1996년 언어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 소르본대 한국어 강사인 한씨는 "2000년 영화 '춘향뎐'이 인기를 끌면서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프랑스에 퍼졌다"면서 "통·번역을 하면서 판소리의 문학적 스케일이 셰익스피어 혹은 프랑수아 라블레에 견줘도 모자라지 않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극작가이자 음악광인 남편과 판소리를 매개로 가까워졌고 '제대로 힘쏟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부부의 연을 맺은 1998년부터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비롯해 공역(共譯)을 전개했고, 관심은 고전 문학으로 이어져 지난해 '숙향전' 번역본까지 냈다.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부부 번역가 한유미, 에르베 페조디에씨가 ‘현의 노래’ ‘수궁가’ ‘숙향전’ 등 한국 문학 번역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바닥을 단단히 다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부부 번역가 한유미, 에르베 페조디에씨가 ‘현의 노래’ ‘수궁가’ ‘숙향전’ 등 한국 문학 번역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바닥을 단단히 다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그러니 이 이중주는 원문(아내)과 윤문(남편)의 화학 작용인 셈. 에르베씨는 "한국의 고전은 비극과 유머, 시대를 모두 안고 있다"며 "그 걸작을 프랑스에 알리는 첫 번째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 욕심은 2014년 한국의 샤머니즘을 주제로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박사 논문을 따도록 추동한 힘. "샤머니즘은 유럽에서 중요한 키워드예요. 유럽이 잃어버린 신비를 한국의 전통과 고전에서 발견한 것이죠."

    번역은 원작의 신묘한 힘에 가닿으려는 한판의 푸닥거리에 가깝다. 한씨는 "작업은 5단계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먼저 한국어 원문을 바탕으로 초벌 번역을 한다. 그걸 서로 읽고 토론한다. 남편이 문학적으로 다듬는다. 그걸 또 함께 토론한다. 꽤 거친 논쟁이 오간다. 그렇게 최종본이 나오면 내가 마지막으로 검토해 출판사에 넘긴다." 이 과정이 1~2년. 특히 의성어를 옮길 때 힘겹다. "예를 들어 '뎅그랑'을 소리만 따 직역하면 너무 유아적이잖아요. 발음과 뜻까지 유사한 불어를 찾아야 해요. 이를테면 'tintinnabuler'(땡그랑 울리다)처럼요." 채굴 과정은 고단하다. "번역은 조용히 잠재해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까요."

    2013년 성석제의 '위풍당당' 번역을 시작으로 현대 소설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내년 황석영 희곡집 '장산곶매' 번역본, 후년쯤 고전 '한중록'과 판소리 '심청가'도 낼 계획이다. 에르베씨가 편집장으로 있는 이마고출판사를 통해 5권 분량의 한국 민담·설화도 출간한다. "한국 문학이 갖춘 예술적 풍성함을 힘닿는 데까지 알리고 싶어요.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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