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부터 현대까지… 역사와 마주한 시간여행

    입력 : 2017.09.05 03:04

    [덕수궁프로젝트―빛·소리·풍경 展]

    함녕전·석어당 등에서 펼쳐지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작

    석어당(昔御堂)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2층 전각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란 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머문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제국 시절부터 현대의 모습을 아우른 한 폭의 그림이 걸렸다. 권민호의 '시작점의 풍경'. 서울역, KTX, 주상복합건물 등을 포함한 근대화된 한국 모습이 연필과 목탄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위로 기차 영상이 흐르고, 용접 불꽃이 튀긴다. 역사와 마주한 현재의 오묘한 시간여행이다.

    400년 역사의 덕수궁이 현대 미술의 무대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이 공동으로 마련한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 빛·소리·풍경'전(展). 정연두·이진준·장민승 등 7팀이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궁궐 구석구석에 설치한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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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덕홍전에 설치된 임수식의‘책가도389’. 대한제국을 연구하는 학자 3명의 책장을 재조합해 병풍 형태의 책가도를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한문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마주하는 중화전 앞 행각에는 전면이 거울로 된 방(房)이 들어섰다. 황신혜밴드로 활약했던 장민승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은 양방언이 협업한 '온돌야화(溫突夜話)'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19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경성과 서울 모습을 재구성한 아날로그 사진 320여장을 수집해 만든 22분짜리 디지털 영상이 흐르는데, 양방언의 음악이 무게감을 더한다. 장민승은 "기록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근대기의 건물들을 재발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덕홍전에는 임수식의 '책가도389'가 있다. 작가는 "고종 황제 책장엔 어떤 책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고종의 침소였던 함녕전 앞 행각은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장소다. 이곳에 마련된 오재우의 '몽중몽(夢中夢)'은 빼놓지 말고 봐야 할 작품이다. 그는 "덕수궁은 고종 황제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꿈을 꾸던 곳"이라며 덕수궁을 꿈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관람자는 행각 안에 마련된 쿠션에 앉아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뒤 홀로 덕수궁을 거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야외에서 진행되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다. 영상과 빛을 사용한 작품이 많아 낮보다는 밤에 가는 것이 좋다. 알록달록한 빛을 사용해 왕의 서가를 연출한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덕홍전)은 해가 져야 색이 도드라지고, 권민호 작품에서 기차가 지나가거나 용접하는 영상은 낮에는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다. 석조전 서쪽 계단 허공에 라디오 전선을 활용해 거미줄처럼 연출한 김진희의 '딥 다운-부용'도 자칫하면 지나치기 쉽다. 가만히 서서 들으면 해체된 라디오 안에서 비밀의 소리가 들려나온다. 11월 26일까지. (02)2022-0600


    [기관정보]
    한국 현대판화의 모든 것…국립현대미술관 '층과 사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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