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로댕'보다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의 '누드'

    입력 : 2017.09.05 03:14

    나라와 식솔 위해 살았으나 구시대 퇴물이란 비아냥에 고개 숙인 아버지들
    그 영욕과 회한의 삶 담긴 당신의 메마른 몸은 '키스'보다 아름다웠다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보랴." 호기롭게 외친 이는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실패한 영웅이자 혁명가이며 이상주의자였지요.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독재를 온몸으로 겪었으나 끝내 광야를 제패하지 못하고 풍운아로 떠돈 영웅은 쓸쓸히 죽음을 맞습니다.

    김훈은 소설 '공터에서'를 통해 그 임종을 서늘히 묘사합니다. '마동수는 빈방에서 죽었다. 마지막 날숨이 빠져나갈 때 마동수의 다리가 오그라졌다. 사체는 태아(胎兒)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사체는 입을 벌렸고 턱에 침이 말라 있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소설 속 아버지가 군에서 휴가나온 아들에게 아랫도리를 맡긴 채 용변을 치우게 하는 장면은 더욱 참담합니다. '병자의 성기는 까맣게 퇴색해서 늘어졌고 흰 터럭 몇올이 남아 있었다. 사타구니 언저리에는 검버섯이 돋아났고 고환 껍질에 습기가 차 있었다.' 곤혹스러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은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미안허다.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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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가 최수앙에게도 아버지는 영웅입니다. 해병대 출신으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대의(大義) 삼아 불도저처럼 달리던 시대에 30년간 공무원으로 봉직한 남자입니다. 세상에 겁날 게 없던 그 이름 '아버지'는 험난한 시대를 수사자처럼 헤쳐갑니다. 그 삶이 나폴레옹 못지않다고 믿은 아들은 '최평열 과장 조각상'을 만들어 경의를 표합니다. 불경스럽게도 좌대 위 아버지는 벌거벗은 나체 조각상으로 서 있습니다. 제목이 '히어로(Hero)'입니다. 영웅은 늠름하지도, 야심만만하지도 않습니다. 구부정한 등, 노쇠한 다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합니다. 이 자그마한 노인이 한때 영웅이었다는 흔적은 불끈 쥔 주먹, 바닥을 움켜쥔 발가락에 겨우 남아 있습니다. 그는 가난을 벗기 위해 근면을 목숨처럼 여겼던 남자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나와 가족도 있다고 믿은 애국자입니다. 남은 건 탄력 없는 근육, '독재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비아냥이었으나 좌대 위 늙은 남자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살 거라며 허공을 노려봅니다. "우린 느희 약해빠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구!"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로댕'보다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의 '누드'
    /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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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뼛속까지 페미니스트인 딸에게 아버지는 영웅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 이웃과 친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가족은 늘 윗목 찬밥으로 밀어둔 가부장입니다. 실속 없이 허세만 작렬하던 아버지는 언제고 "대어 한 마리 낚으러 간다"며 전국을 누볐지요. 심신으로 골병든 어머니가 두 번이나 대수술 받는데도 사업을 핑계로 얼씬 안 하던 아버지를 딸은 증오했습니다. 잠시 반짝했던 무역업이 파산한 뒤 변두리 단칸방으로 쫓겨난 뒤에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일푼에도 "두고 봐라!" 큰소리 땅땅 치던 아버지는 끝내 재기하지 못합니다. "드디어 돈줄을 찾았다"며 우기시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마동수의 아들처럼, 딸도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습니다. 병상 아버지를 씻기던 늙은 어머니가 오열했을 때입니다. "젊은 날엔 참으로 탐스럽더니, 신성일도 울고 갈 만큼 잘 생겼더니…."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던 광목천 위로 마른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던 육신, 복부 한가운데 호스를 꽂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사내는, 딸이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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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보다 아름다운 남자의 몸을 본 적 있나요? 당신이 엽서에 적어 알려준 그 전시에서 나는 그 눈부신 몸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로댕의 '키스'가 새겨진 엽서를 보내주었지만, 날 울린 남자는 키스의 근육질 연인이 아닙니다. 생의 영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장작개비처럼 말라비틀어진 사내. 뭐가 그리 괴로운지 머리를 감싸 안고 흐느끼는 남자. 툭 건드리면 바스러질 듯 푸석한 알몸은 그해 가을 순백의 광목천 위에 부려져 있던 내 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 마동수였고, 애국공무원 최평열이었습니다. 가슴 가득 드넓은 광야를 품었으나 사막보다 황량한 시간의 벌판을 홀로 걸어가야 했던 아비들. 나라와 식솔 위해 이 악물고 살았으나 구시대의 퇴물, 탐욕의 화신으로 조롱받아야 했던 사내들이 고개 숙인 채 울고 있었지요.

    언 땅에 아버지를 묻고 온 날, 서랍장에서 발견한 유품은 낯설었습니다. 허명(虛名)으로 나열된 감사패들 사이로 싸늘하게 반송돼 돌아온 당신의 초라한 이력서들과 '꽝'이 돼 휴지로 구겨진 5000원짜리 로또복권 수십 장…. 술에 거나히 취하면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흥얼거리던 아버지의 슬픔을 단 한 번도 헤아려 드리지 못한 딸은, 프랑시스 그뤼베의 '욥', 그 무너질 듯 아득한 절망에 잠긴 성서(聖書) 속 사내 앞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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