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길 벽화 두고 논란

    입력 : 2017.09.04 17:01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구 중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하 김광석길)’에 설치된 벽화와 조형물을 두고 관할 지자체와 벽화 제작에 참여한 예술단체가 대립하고 있다.
    해당 대구 중구청이 김광석길의 관광인프라 개선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체 벽화 중 25~30점 정도를 교체하겠다”고 나서자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 인디053 등 예술단체들이 “거리를 만든 창작자들의 본질을 완전히 흐리는 것이며, 창작자들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 된 벽화와 조형물은 김광석길 350m에 걸쳐 조성된 것을 말한다. 현재 김광석길에는 김광석의 노래말과 삶을 테마로 벽화와 각종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벽화는 47점에 조형물은 3점이다. 김광석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벽화와 조형물은 어느날 훌쩍 우리곁을 떠나버린 가객 김광석(1964~1996)을 기리고 추억하는 멋진 기념물이다.
    이 벽화와 조형물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0년. 발단은 전통시장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문화예술장터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뜻을 담은 ‘문전성시프로젝트’다. 6·25전쟁과 흥망성쇄를 함께 한 방천시장을 살려 보겠다며 시작한 문전성시프로젝트 중 하나로 김광석길 조성사업이 선정됐으며, 이 사업에 따라 김광석길 전체 350m 구간 중 240m 구간에 벽화와 조형물이 설치됐다. 여기에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후 나머지 110m 구간에 벽화가 제작됐다. 이 벽화와 조형물은 김광석길을 널리 알린 결정적 산물이다.
    /대구 중구청 제공 김광석길에 설치된 벽화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구청은 김광석길의 활성화를 위해 쌈지공원, 김광석조형물, 골목방송국, 야외공연장 등의 시설을 보완하는 한편 화장실신축, 4회에 걸친 김광석노래부르기대회, 추모행사, 50주년 기념 거리콘서트 등의 다양한 행사를 펼쳐 김광석길을 알리는데 주력해 왔다.
    김광석길이 뜨자 여기에는 카페와 상점 56곳이 성업을 할 정도로 대구의 관광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평일에는 1500여명, 주말에는 50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 2013년 향토자원베스트 30, 2015년 한국관광 100선, 201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2015년 K-스마일부문 한국관광의 별, 2016년 지방자치경영대상, 2017년 한국관광100선 등을 수상해 이름값을 했다.
    /대구 중구청 제공 김광석길의 전경. 왼쪽 공연장에서는 김광석을 추모하는 공연이 자주 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구청이 최근 김광석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을 벌이겠다고 하면서 대립이 시작됐다.
    중구청은 2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벽화 47점 중 25~30점을 교체하겠다고 했다. 기존 벽화 중 작품성이 뛰어나며 인기가 좋은 작품은 보존하되 작품의 훼손 정도가 심하거나 선호도가 낮은 작품은 우선적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또 김광석길 입구와 출구를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홍보사인 또는 홍보조형물을 조성하고 김광석의 대표곡인 ‘이등병의 편지’를 주제로 한 혼련소로 가는 열차를 제작키로 했다.
    중구청은 이를 위해 공개입찰을 통해 시행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 같은 중구청의 계획에 대해 예술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 인디053 등 예술단체 회원 20여명은 4일 오후 김광석길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관’트리피케이션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내건 ‘관트리피케이션’은 특정 거리가 뜨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동시에 올라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빗대 관에 의한 내몰림을 말한 것이다.
    이들은 성명의 첫머리에서 중구청의 사업을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문화사업 추진의 결정판’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김광석길은 40여명의 작가와 문화기획자들이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기획을 가지고 작품들을 만들어 왔으며, 이 때문에 거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김광석길이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거리에는 급속도로 자본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휘몰아치는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서 저마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여 문화예술인들은 주민, 예술인, 행정 등이 함께 하는 거버넌스 형태의 운영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으나 지지부진하고 전문가포럼을 통해 김광석길의 방향과 올바른 형태 등을 논의하자고 요구했으나 중구청은 장기적인 비전과 컨트롤타워를 만들지 못한채 당장 눈에 보이는 일회성 이벤트와 행정적 성과내기에 급급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김광석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은 김광석길이 중구청의 소유이니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사업공고문에는 사업수행으로 얻어지는 각종 자료일체, 저작권 및 기타 법률적인 행위의 권한 일체는 중구청의 소유가 된다고 명시하는 한편 벽화와 조형물은 2년 이상의 기간이 지나면 수급자의 동의 없이 철거할 수 있게 된다”며 “김광석길의 감성, 서정성, 예술성을 지키기 위해 했던 애초의 철학과 예술인들의 자율적 참여방식은 오간데 없고 예술인은 그저 용역을 수행하는 ‘을’로만 취급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지금과 같이 중구청이 창작자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들은 ▲김광석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의 즉각 철회 ▲김광석길의 방향성을 재설정하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열린 거버넌스 형태의 운영위원회 설립과 운영 ▲민관 공동연구 형식으로 공정한 거버넌스 매뉴얼 제작 ▲문재인 정부의 주요공약인 도심재생사업 앞에 놓인 난제들이 농축된 현장의 문제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질적 도심재생과 공공예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작업 진행을 각각 요구했다.
    김광석길을 꾸미고 만들었던 이들은 당시의 철학인 ‘참여 예술인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협의해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행정은 이를 후원하는 방식’이 돼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중구청은 “김광석길의 기존 벽화와 콘텐츠 등이 최소 3년에서 7년 정도가 경과함에 따라 새로운 스토리 확장과 함께 관광객들의 새로움에 대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김광석길 개선사업의 철회와 관련해서는 “오는 14일 제안서 접수 등 업체선정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 중에 있어 행정의 신뢰성이 보장돼야 함으로 철회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열린 형태의 운영위원회를 설립·운영하라는 요구가 있는데 현재 김광석길을 포함한 대봉동 일원을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대봉동문화마을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대봉동문화마을협의회가 구성돼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과 예술가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밖의 요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창작의 자유를 요구하는 예술가들과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자치단체의 대립이 어떻게 진행될 지 미지수다.
    /대구=박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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