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車·네거티브 없는 독일의 '수면 유세'

    입력 : 2017.09.04 03:05

    [총선 20일 앞둔 독일… 김강한 특파원 르포]

    춤·노래로 눈길 끄는 대신 유권자와 1대1 정책 대화
    상대후보 공격도 거의 없어
    유세 경쟁의 핵심은 '포스터'… 목 좋은 곳에 붙이려 벌금 불사
    NYT "난민 문제 등 현안 많은데 선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김강한 특파원
    김강한 특파원

    지난달 26일 아침(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세인트 마티아스 성당 앞에서 열린 주말 시장(市場). 빨간색 점퍼를 입은 한 60대 여성이 40대로 보이는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서 선거 전단을 나눠주는 젊은 남성이 없었더라면 이 여성이 오는 24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에 출마한 사회민주당(SPD) 후보 메흐틸트 라베르트(60)라는 것을 모를 뻔했다. 라베르트 후보는 한국처럼 확성기를 쓰지도 않았고, 어깨띠를 두르지도 않았다. 정당 점퍼를 입고 춤과 노래를 하는 선거 운동원도 없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인 선거 운동원 니코 로트(26)씨는 "독일 선거에선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일대일로 대화하며 정책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유세한다"고 했다.

    총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베를린 거리는 선거 포스터를 빼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유세 차량도, 명함을 나눠주려고 경쟁하는 선거 운동원도 없다. 녹색당 선거운동원들이 전단과 함께 막대 사탕을 나눠주는 게 그나마 특색 있는 유세로 꼽힌다. 이를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선거 유세는 '수면 유세(sleep election campaign)'로 불린다"고 전했다. 베를린 시민인 알리나 쿠와에스닉(33)씨는 "차량과 마이크로 시끄럽게 선거 운동을 한다면 쾌적한 거주 환경을 중시하는 독일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반감만 살 것"이라고 했다.

    상대 후보를 인신공격하는 등 네거티브 공세도 보이지 않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CDU·기독민주당)가 도전자인 마르틴 슐츠 SPD 총재에 대해 지금까지 한 말은 "나는 그를 인정한다"는 한마디가 전부다. 독일 정당과 지도부는 TV 인터뷰나 당 대회 등을 통해 주요 정책을 알리는 데 집중한다. 한 독일 관료는 "독일 유권자들은 정당의 정책과 성과를 놓고 투표한다"면서 "네거티브 공세나 표퓰리즘적 선동을 해선 얻을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독일 총선에 출마한 사회민주당(SPD) 메흐틸트 라베르트(빨간 점퍼) 후보가 유권자들과 만나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오는 24일 총선을 치르는 독일에선 확성기·차량 등을 동원한 요란한 거리 유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독일 총선에 출마한 사회민주당(SPD) 메흐틸트 라베르트(빨간 점퍼) 후보가 유권자들과 만나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오는 24일 총선을 치르는 독일에선 확성기·차량 등을 동원한 요란한 거리 유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베를린=김강한 특파원

    메르켈 총리와 슐츠 SPD 대표는 3일 저녁 첫 일대일 TV 토론을 갖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일 보도했다. 이번 총선에서 양당 지도자가 처음으로 정면 대결하는 것인데, TV 토론은 방청객 없이 진행자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의 마케팅 임원인 로버트 해케씨는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부터 나치의 독재까지 정치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어 과도한 정치 공방은 자제하는 분위기"라며 "선거 이후 연정 파트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심한 언쟁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은 1949년 이후 줄곧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독일 정당들도 소리 없이 유세 경쟁을 펼친다. 선거 포스터 위치 경쟁이 대표적이다. 칸셀 키질테페 SPD 의원은 공영 방송 도이체벨레(DW)에 "시민들 눈에 잘 띄는 가로등 기둥이 가장 인기가 높다"며 "포스터는 선거일 7주 전부터 설치할 수 있는데, 벌금을 물더라도 몇 시간 먼저 (좋은 자리에) 포스터를 붙이려고 경쟁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가정 방문 유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집권 기민당이 이런 방식으로 올해 3차례 지방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다른 정당들도 따라 하는 분위기다.

    메르켈 총리, 슐츠 SPD 총재
    메르켈 총리, 슐츠 SPD 총재

    '조용한 선거'에 대한 비판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칼럼에서 "독일은 난민 100만명을 받아들이고, EU 구제 금융을 주도하는 등 유럽 중심 국가이지만 선거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고 했다. 주요 이슈에 대한 치열한 선거 토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달 24일 독일 여론조사 기관 발레히트 발표에 따르면, 집권 기민당·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지지율 41%를 기록해 25%의 SPD를 앞섰다. 메르켈 총리의 4연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나라정보]
    신용카드도 잘 안 쓰던 독일인, 모바일 결제에 눈뜨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