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부탄에선 돈이 모든 걸 좌우하지 않아… 다른 나라였으면 못 살았을 것"

    입력 : 2017.09.04 03:05

    ['행복 세계 최고'라는 부탄에 가다… 제주대 유학한 부탄 여성 '양치엔']

    부탄과 인연 있는 문 대통령, 야당 시절 마지막 해외 여행지
    당시 강렬한 인상 받은 듯… '부탄형 행복' 한국식으로 개발

    부탄의 幸福 받아들이기에는 우린 너무 멀리 떠나와 있어…
    '헬조선'의 인천공항에 내릴 때 마치 지상천국 온 느낌 받아

    6시간 반을 날아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두시가 넘었다. 호텔에서 잠깐 쉰 뒤 다시 공항으로 나와 부탄행으로 갈아탔다. 2시간 반 비행했을 때 왼쪽 창(窓)으로 구름을 뚫고 솟은 에베레스트봉(8848m)이 보였다.

    부탄 파로공항에는 양치엔(31)씨가 나와 있었다. 쌍꺼풀 없는 눈에 동그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번 단체 여행의 현지 가이드였다. 동국대 티벳대장경역경원의 초청을 받은 나는 불교 승려 및 신도 150여 명과 동행했다.

    초행자는 부탄에 환상(幻想)을 품고 들어온다. '은둔의 왕국' '마지막 샹그릴라'로 그려져 왔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이를 현실로 입증하는 뉴스가 발표됐다. 영국의 좌파 성향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이 148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부탄을 1위에 올렸다. 당시 부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달러. 물질적 풍요로는 우리의 발끝에도 못 따라오는 나라다. 그럼에도 부탄 사람들 97%가 "행복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히말라야 산록의 소국(小國)은 국제무대에 '국민총행복(GNH)'이라는 아주 새로운 표준(標準)을 제시했다. 재화를 많이 생산했거나 경제성장과 번영으로만 국가 순위를 평가하지 말라,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로 국가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록인 '사람이 먼저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부탄과 인연이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야당 실력자로서 마지막 해외여행지가 부탄이었다. 당시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이 SNS를 통해 퍼졌다. 그가 부탄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대통령이 된 뒤 '부탄형 국민행복지수를 한국식으로 개발하겠다'고 했으니까.

    부탄의 행복 비결은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우리 젊은 세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이다. 그래서 양치엔을 만난 것은 운이 좋았다. 그녀가 서툰 한국어로 "제주대에 다녔습니다. 12년 전입니다"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부탄에서 제주도까지 유학 왔다는 게 놀라웠다. 이튿날 산꼭대기 '채리 사원'까지 양치엔씨와 나란히 올라갈 기회가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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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엔은 “제주대에 다녔습니다. 12년 전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탄=최보식 기자

    ―어떻게 한국을 알고 유학까지 갔나?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한국인 태권도 코치가 있었다. 이분이 한국 음식을 맛보여주고 한국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려줬다. 한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유학 경비는?

    "부탄은 무상(無償) 교육이다. 유학도 정부에서 보내준다. 고교를 졸업한 뒤 유학생으로 선발됐다. 여기에 파견 나온 한국 선생님에게 먼저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그 뒤 교환 학생 프로그램으로 제주대에 가 3년간 한국어와 마케팅을 배웠다."

    ―제주도 생활은 어땠나?

    "그때 제주도의 자연 환경은 부탄과 비슷했다. 좋은 기억이 많다. 학생 숙소에서 대학까지 버스로 왕래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함께 타는 한국인 아주머니와 친해졌다. 이분이 '잘 잤어요? 오늘 뭘 먹었어요?'라며 물을 때마다 '컵라면과 김치를 먹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이분이 내 생일에 선물 상자를 건네줬다. '컵라면과 김치만 먹지 말고 맛있는 것도 먹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귀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그런 따뜻한 정(情)이 우리 부탄 사람에게도 있다."

    ―그 뒤로 제주도에 다시 가봤나?

    "12년 지났다. 여기서 한국 관광객은 만나지만 한국은 가보지 못했다. 한국 손님들에게 '제주도가 옛날과는 달라.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많이 바뀌었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팠다."

    제주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열 달쯤 지나 이번에는 오스트리아로 유학했다. 잘츠부르크의 한 대학에서 2년간 호텔마케팅을 배웠다. 그녀는 스물네 살에 결혼했다. 유엔 직원으로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던 부탄 젊은이였다. 현재 남편은 부탄의 정당(政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 당시 시부모님도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독일에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탄이 더 좋았기 때문에 돌아왔다."

    ―유럽 선진국보다 어떤 점에서 부탄이 더 좋다는 건가?

    "이렇게 훌륭한 자연 환경이 세계 어디에 있나. 우리는 매 끼니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가 없다. 정부가 교육과 의료 등을 모두 책임져준다. 부탄 바깥에서는 이렇게 누릴 수가 없다. 선생은 잠시 머물기 때문에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두세 달 살아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녀는 '좋은 음식'을 말했지만, 객관적으로 부탄에는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다. 부탄만 100회 이상 와본 실크로드 여행사 이상원(61) 대표는 "과거에는 호텔 뷔페조차 대여섯 가지 음식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소 종류는 제한적이고, 과일은 거의 나지 않아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된다. 살생(殺生)을 금하기에 식탁에 육류가 거의 없다. 인도에서 수입된 돼지고기를 말려 볶아먹는 정도다. 부탄에는 맥주 공장과 물 공장을 빼고는 제조업이 없어 공산품도 대부분 인도에서 들어온다. 생필품 가격이 몹시 비싸다.

    그녀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무상 복지에도 이면(裏面)이 있다. 의료 혜택이 무상 제공되지만 부탄의 영아(嬰兒) 사망률은 26.9%다. 평균수명은 65세 안팎에 머문다.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는 X레이가 고작이고 고가 첨단 장비가 없다. 공짜의 질(質)이 형편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돈 있는 고객을 위한 개인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 하나의 역설(逆說)은 무상 교육에도 부탄 사람들의 문맹률은 40%쯤 된다. 산속에 사는 주민의 아이들은 아예 학교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탄은 절대 빈국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재원은 수력발전에 의한 전기 판매, 농·임산물 수출, 관광업, 외국 원조에서 나온다. 이를 공공 인프라 구축이나 전반적인 국민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한 투자 대신 무상 복지로 돌린 것이다. 그나마 공짜로 나눠줄 수 있는 것도 한반도 4분의 1 면적에 비해 인구는 75만명밖에 안 되기에 가능한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에서 귀국한 양치엔은 한 호텔의 영업 매니저가 됐다. 여자로서는 최초였다. 그 뒤 부탄 최대 여행업체 매니저로 옮겼다. 출산해서는 두 자녀의 양육을 위해 일을 쉬었다가 최근에 여행 가이드를 시작했다. 자유여행이 금지된 부탄에 가려면 하루 250달러(비수기 200달러)를 체재 날수만큼 입금해야 비자가 나온다. 정부가 여기서 세금 명목으로 일정 비율 가져가고, 나머지 비용이 부탄에서의 숙식 및 교통비가 된다. 부탄 정부는 여행자에게 '가이드 동반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산업 구조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생길 수 없는 부탄에서 여행 가이드는 선망의 직업이다. 그러나 가이드의 한 달 봉급은 200~250달러다.

    "여기서는 돈이 모든 걸 좌우하지 않는다. 나는 빈농 집안에서 출생해 형제가 일곱이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못 살았을 것이다. 부탄이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 행복하다. 자연, 문화, 전통, 불교, 우리의 왕(王)이 부탄의 삶을 행복하게 해준다."

    부탄의 대표적 명소로 절벽에 세워진 탁상사원.
    부탄의 대표적 명소로 절벽에 세워진 탁상사원.

    대화하는 동안 그녀는 왕(王)에 대한 존경심을 빈번하게 표현했다. 2006년 즉위한 현재의 왕 지그메 남기엘 왕추크(37)는 절대 왕권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부탄 어디를 가든 사진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왕의 증명사진이 아니라, 평민 출신인 왕비와 어린 아들이 나오는 가족 사진이다. '국민총행복'은 단란한 가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부탄에는 공식적으로 '일부다처제'가 인정된다. 다만 남편이 둘째 부인을 맞이하려면 반드시 첫째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들에게 일찍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한 부친(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은 아예 같은 자매 4명과 같은 날 결혼했다.

    ―부탄에도 '한류'가 불고 있다고 들었다. 젊은 세대는 바깥의 자본주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데?

    "K팝과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나오는 가수나 탤런트는 다들 예쁘고 착하다. 범죄나 폭력성이 없다. 부탄에 나쁜 영향이 없다고 본다. 어느 나라든 젊은 세대는 TV와 인터넷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게 그 나라의 실체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우리도 자동차와 휴대폰 등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걸 가정과 사회에서 지도하면 된다."

    부탄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규제가 심한 편이다. 전통 복장을 반드시 입어야 하고 어기면 벌금을 문다. 건축물의 창틀 문양도 규격화돼 있다. 20년 전에는 이주해 살던 네팔계 사람 10만명을 힌두교도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쫓아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4박 5일의 체류 기간 접해본 부탄 사람들은 선하고 친절했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선의(善意)를 여러 번 경험했다. 더 많은 물질이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 의심하지 않는 마음, 순응, 만족, 감사에서 행복은 비롯되는지 모른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체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도 클 것이다.

    무엇보다 물질의 결핍이 있어도 비교 대상이 주위에 없으면 행복할 수 있다. 부탄 사람들은 아직은 욕망과 세련, 편리의 세상을 모른다. 바깥세상을 덜 만났다는 뜻이다. 이제 인터넷에 의해 다른 선진국의 생활 모습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머지않아 부탄 사람들의 행복 잣대가 흔들릴 수 있다. 인간의 욕망만큼 힘센 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객으로 부탄에 가서 잠깐 쉴 수는 있다. 하지만 부탄에서 삶을 꾸려가는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와 무한경쟁 속에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각오가 필요하다. 당장 궁핍과 불편, 따분함, 비위생적 주거 환경에서 비명을 내지를 게 틀림없다. 양치엔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지 모른다. 내가 '헬조선'의 인천공항에 내리면서 마치 지상천국에 온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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