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살게 하라

    입력 : 2017.09.02 03:04

    힘없는 나라 여성으로 신체적 자유 훼손당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건 '강요된 굴욕' 부인 못 해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무대에서 증언하는 그들… 외면 말고 박수 보내야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1970년대 '미제 아줌마' 보따리에는 주스 가루와 막대 사탕, 은박지에 싼 초콜릿과 초코 시럽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린 입에도 미제(美製)는 한국 것보다 뭐가 좋아도 좋아서 자꾸 먹고 싶었다. '미국은 부자 나라'라는 걸 혀가 먼저 알았다.

    철 좀 들자, 미국 물건이 달리 보였다. 그 달콤한 것들이 '양색시들이 양키에게 부탁해 PX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다. 양공주, 양색시란 말은 크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알게 된 기지촌 삶은 "미군의 만행"이기에 젊은 피를 달궜지만, 개개 여성의 '선택'마저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연민하기에는 그때도 어렸다. "식모도 있고 공순이도 있는데 양공주가 뭐야…"라는 미제 커피잔을 든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사업가가 옛날 들려준 얘기다. "70년대 선원들이 납치되어 아프리카에서 중재할 사람을 데려왔다. 당국자를 만난 그를 요정에 데려갔다. 다음 날 외국인이 화대를 줬더니 여자가 말했다. '내가 돈 벌려고 이 냄새나는 ○둥이와 잤겠나. 돈은 됐고, 가서 우리나라 사람이나 좀 풀어달라.' 뒷부분만 통역해줬더니 감격하더라. 나라가 힘이 없으면 여자가 고생한다." '매춘부도 애국했다'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식민지 여성을 데려다 위안부 만들고, 패망 후 자국에 진주한 미군을 위해 공창(公娼)을 설치했던 일본과 우리는 무엇이 달랐던가.

    "열두 살에 집 나와 갈 데가 어딨어. 거기서 영철이를 만났어. 처음에는 돈 받으니까 했는데 나중에는 정이 들더라고. 영철이가 미국으로 가고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답장이 안 와." 다큐멘터리 '전쟁과 여성'에 출연해 쿠바 출신 미군 병사 영철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기지촌 출신 김숙자(72)씨다. 지난 2012년부터 기지촌 여성을 다룬 연극이 꾸준히 공연됐는데, 올해는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가 12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무대에 오른다. 김씨도 출연자 중 한 명이다.

    적개심이나 원망 없이 인생을 덤덤하고 담대하게 털어놓은 김씨 모습이 며칠째 가슴에 남았다. 그가 그렇게 얘기한다 해서, 공권력이 성병 낙검자(落檢者) 수용 시설(속칭 몽키하우스)을 만들어 여성을 무자비하게 격리했던 사실, "여러분은 애국자니까 늙으면 9평 공짜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겠다"던 권력자의 잔인한 독려가 역사에서 지워지지는 않는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낙검자 시설에 강제 수용됐던 57명에게 50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국가가 기지촌을 설치 관리했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들은 낙담했지만, 이걸 법으로 다투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시작이다.

    몇 해 전 미국에서 만난 토시아씨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던 폴란드인 여성이다. 새벽이면 찾아오는 패닉, 수류탄에 입은 부상 통증으로 80세까지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아우슈비츠 생존자'라고 칭했다. 미국에서는 납치 강간, 테러 사건 피해자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토시아가 말했다. "피해자는 그 시절을 살지만, 나는 그걸 헤쳐나와 오늘 너랑 이렇게 앉아서 그때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도 '생존자'가 없지 않다. 위안부의 삶을 세상에 당당히 공개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를 시작으로 여러 여성이 증언해왔다. 김숙자씨도 그런 사람이다. "부끄러운 걸 왜 들춰내느냐" "옛날엔 다 그랬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내세우는 논리가 그거다. 이런 주장이 커지면, 반대로 '박제화된 피해자' '신격화된 피해자'가 늘어난다.

    위안부 생존자 여성이 이런 말을 했다."조금 아팠으면 참겠는데, 많이 아팠어."

    무대에 서는 '생존자 김숙자 언니'를 보러 가고 싶다. 잘 견뎌온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미제 사탕 얘기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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