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접촉 사고 당했는데, 가해 車 수리비 나눠 내라니… 애매한 과실비율

    입력 : 2017.09.02 03:02

    교통사고 과실비율 분쟁 작년 5만2590건…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분쟁 3분의 1은 '끼어들기'
    갑자기 차선변경 추돌때 보통 뒤차도 30% 책임
    법적인 구속력은 없어 불복땐 법원까지 가기도

    지난달 19일 오후 8시 40분쯤 대전 유성구의 한 왕복 5차선 도로에서 운전하던 김모(39)씨는 무단횡단하던 남녀와 어린아이를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30대 남녀와 다섯 살 여자아이는 반대편 차선에서 김씨와 교차하던 차량 뒤편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없는 곳이었다.

    이 사고로 여자는 꼬리뼈 골절을 당해 전치 12주, 남자와 아이는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경찰로부터 벌점 10점(안전운전 의무위반)과 범칙금 4만원 처분을 받았다. 무단횡단 사고였기 때문에 경찰은 김씨를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보험사 손해배상 문제가 남았다. 김씨는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이런 경우 보통 운전자 과실 80, 보행자 과실 20이 나온다"고 설명을 들었다는 이야기와 사고 당시 자신의 차 블랙박스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김씨가 올린 게시글에는 '운전자와 보행자 과실비율이 반대로 된 것 아니냐' '무단횡단 사고는 보행자 과실 100을 물려야 한다' 등 보험사 판단에 납득할 수 없다는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다.

    사고 블랙박스 영상으로 과실비율을 판단하는 TV프로그램 진행자인 한문철 변호사에게 김씨 과실비율에 대해 물었다. 한 변호사는 영상을 본 뒤 "보행자가 나타나고 충돌까지 약 3초 정도 걸리는 데 빗길 운전을 고려해 속도를 더 줄였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야간의 무단횡단임을 고려하면 이 경우 운전자 과실은 최대 60 정도이고, 보험사 직원이 설명한 운전자 과실 80은 환한 대낮에 횡단보도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에나 나오는 비율"이라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발생 원인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있는가를 따지는 과실비율 분쟁이 크게 늘고 있다. 한문철 변호사 홈페이지에 과실비율을 판단해달라며 올라오는 사고 블랙박스 영상은 한 달 200건이 넘는다. 관련기관에 접수되는 과실비율 분쟁 민원도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분쟁 조정은 2012년 308건에서 지난해 2305건으로 8배 가까이 늘었고,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은 손해보험협회 산하 '자동차보험 구상금분쟁심의위원회(구분심)' 심의도 같은 기간 2만2450건에서 5만2590건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과실비율 분쟁 年 5만건 넘어

    교통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운전자를 대신해 손해배상 문제를 처리한다. 현재 보험회사에서 과실비율을 따지는 기준은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으로, 1976년 국내에 도입됐다. 1974년 일본 민사법원이 발표한 기준을 토대로 도입, 우리나라 교통법규와 판례 등을 반영해 지금까지 7차례 수정됐다. 교통사고를 510개 유형으로 나눈 기준이다. 사고가 나면 우선 활용되는 기준이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사고 당사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해 소송을 벌이면 법원이 과실비율을 최종 판단한다.

    지난 1월 변모(42)씨는 서울 마포구 한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던 중 주차장에서 나오던 차량과 부딪쳤다. 주차장 통로가 좁아 교행(交行)이 불가능했으며 자동차가 나오고 있다는 경고등은 고장 나 있었다. 두 운전자는 과실비율에 대해 합의하지 못해 양쪽 모두 분쟁 심의를 청구했다. 변씨는 "보험사 직원이 상대측 과실이 크기 때문에 과실비율이 40 미만일 것이라고 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구분심 심의위원들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변씨 차량을 보고 멈춘 상대 차량은 과실이 없다"며 변씨에게 과실 100을 적용했다. 변씨는 "내려가는 쪽에선 상대 차량이 보이지 않았고 상대 운전자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과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보험사 직원이 설명한 과실비율과 너무 달라서 허탈했다"고 말했다. 변씨 보험회사는 상대방 보험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구분심 심의위원 권정숙 변호사는 "실제 교통사고는 상황과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정기준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근본적 한계가 있다"면서 "소심의와 재심의를 거치면서 양쪽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합의를 유도하기 때문에 소송으로 가는 분쟁은 5% 내외"라고 밝혔다. 안성준 구분심 사무국장은 "최근 분쟁 건수가 크게 늘면서 변호사 심의위원을 14명에서 30명으로 늘렸고, 보험협회 인정기준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만들어 운전자들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분쟁 3분의 1은 끼어들기 사고

    과실비율 분쟁 중 가장 다툼이 잦은 교통사고는 '차로변경' 충돌이다. 구분심 전체 심의 중 35.7%를 차지한다.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뒤차가 들이받은 경우, 과실비율 인정기준에 따르면 앞차 70, 뒤차 30의 과실이 있다. 깜빡이를 켰는지 여부, 규정 속도나 버스전용차로 위반 여부, 초보운전 표시 여부에 따라 10~20씩 과실 비율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 보통 앞차는 충분한 차간 거리를 확보했으니 뒤차 잘못, 뒤차는 갑자기 '칼치기'를 하며 끼어든 앞차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사와 구분심은 블랙박스 영상과 차량 파손 형태 등을 토대로 과실비율을 따지지만 운전자들끼리는 서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해 합의가 쉽지 않다. 지난 3월 보험연구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실비율 심의 청구인의 62%는 "상대방 과실 100, 본인 과실 0"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과실비율 인정기준은 판례를 제외하면 유일한 판단 기준이지만 단점이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웅 한국손해사정사회 사무국장은 "보험회사끼리 인정기준이나 유사 판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빠른 사고 처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고 상황의 세부적인 요소를 모두 반영하고 싶은 운전자의 뜻이 무시당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차장 사고를 겪은 변씨도 "보험사 측이 심의 결과도 알려주지 않고 소송 진행도 물어본 뒤에야 답변을 들었다"며 "보험사가 보험료 값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과 민법 제396조(과실 상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당사자는 각각 자기의 과실비율만큼 상대방에게 배상해야 한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과실비율 계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보다 손해를 분담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며 "사고를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과실비율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그만큼 가해자 취급을 받았다며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 위원이 연구한 결과, 과실비율 분쟁 심의에서 청구인 보험사 부담금은 평균 43% 줄어들고 상대 운전자 보험사 부담금이 그만큼 늘어났다. 그만큼 사고현장에서 보험사들이 제시하는 과실비율이 엉망이라는 뜻이다. 사고 당사자들이 '내 보험사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고 의심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해석도 된다.

    외제차 막가파 운전의 이유

    현재 자동차보험 배상 제도는 양쪽 손해를 모두 더한 뒤 과실비율에 따라 나누도록 하고 있다. 고가의 수입차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 제도의 모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국산 경차와 고가의 수입차가 사고를 냈고 과실비율은 경차 20, 수입차 80이라고 하면 경차가 압도적인 손해를 보게 된다. 경차 수리비로 200만원, 수입차 수리비로 3000만원이 나왔다면 수입차 운전자는 총 수리비 3200만원의 80%인 2560만원을 부담하면 되지만 경차 운전자는 640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택시기사들이 "외제차는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상대차 가격에 따라 내 과실비율이 적어도 큰돈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는 사고 책임이 적은 민법상 피해자가 많은 돈을 부담하고 보험료 할증을 떠안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사고 책임이 커도 가해자라는 생각보다 비율에 따라 '돈을 좀 더 내면 된다'는 잘못된 관념이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텍사스주 등 20개 주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피해자 과실이 가해자 과실보다 적으면 피해자는 전혀 배상하지 않는 '51%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위 사고를 51% 제도에 따라 배상하면 경차 운전자는 배상 책임이 없고, 외제차 운전자는 경차 수리비 200만원의 80%인 160만원을 내고 자신의 수리비는 전부 책임진다. 단 과실비율이 50 대 50이라면 서로 상대방 수리비의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 콜로라도, 유타 등 12개 주는 이와 유사한 '50% 제도'를 적용하는데 과실비율이 반반이라면 각자 자신의 수리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이 두 가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손해배상제도에 미국과 비슷한 방식을 도입하는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할 예정이다. 정갑윤 의원은 "현행 과실 제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손해를 부담하는 불합리성 때문에 안전운전을 막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외제차가 '박을 테면 박아봐라' 식으로 운전해도 알아서 피하게 만드는 나쁜 제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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