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녀'의 뒷모습

  •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입력 : 2017.09.01 03:03

    [정여울의 '테이트 명작전-누드' 리뷰]
    인습과 편견에 갇힌 '몸'… 예술로 해방시킨 '전사'들의 붓질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저자

    일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 이들은 말한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 아끼면 뭐해!"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영 불편하다. 죽으면 흩어질 몸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혹사하는 것은 자신을 향한 폭력이 아닌가. 하지만 몸을 신줏단지 모시듯, 너무 애지중지 관리하는 이들의 완벽주의도 또 다른 차원에서 불편하다. 온갖 치밀한 관리 프로그램에 몸을 끼워 맞추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몸'은 바람직하지 못한 신체, 기준치에 미달하는 신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때로는 우리의 상상력과 온갖 가능성이 '몸'이라는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우리의 꿈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는 '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테이트 명작전─누드'에 전시된 작품들은 여전히 인습과 편견에 갇힌 몸을 예술의 붓질로 해방시키는 위대한 전사들처럼 보였다.

    예술가들이 저마다 지닌 최고의 기예로 빚어내고, 찍어내고, 색칠해낸 온갖 누드화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자니, 무더위에도 겹겹이 껴입고 '타인의 벗은 몸'을 관찰하는 우리들이 거꾸로 그림 속 인물들의 구경거리가 된 듯하다. 그들은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왜 그리 갑갑한 옷과 장신구로 몸을 짓누르고 있는가. 당신들의 몸 그대로가 저마다 최고의 작품이고 기적이고 우주인데.' 나도 모르게 로댕의 '키스' 앞에서는 장엄한 숭고미를 느끼면서도, 마티스의 대담하면서도 거침없는 필치가 빛나는 '옷을 걸친 누드' 앞에서는 볼이 살짝 붉어지고 말았다.

    나는 '지나친 보여주기'와 '외설성의 논란'을 말끔히 제거한, 세련되고 우아한 누드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누드화는 옷뿐만이 아니라 온갖 가식과 억압을 벗어버림으로써 주어진 편견과 싸우는 것인데도 나도 모르게 '기품 있는 누드'를 기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2000년 사진작 ‘너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날 버리고 떠나지마’였다’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2000년 사진작 ‘너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날 버리고 떠나지마’였다’. /테이트미술관

    하지만 이 모든 누드화들을 다 관람하고 나니 '뭐니뭐니해도 누드의 존재 이유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구나' 싶었다. 화가들이 수많은 논란과 탄압에도 끝내 누드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는, 누드화에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매혹적인 자유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때보다 몸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우리의 몸은 아직 충분히 해방되지 못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이미 오래전에 온갖 장애물로부터 해방된 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의 제약과 편견 속에서 저마다 현재진행형으로 '싸우고 있는 몸'이기 때문에 비로소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트레이시 에민의 '너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날 버리고 떠나지마'였다'라는 사진 작품이 아련한 잔상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결코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다가 끝내 버려진 그녀의 쓸쓸한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을 연주하는 가녀린 첼로처럼 보였다. 그 사진 속에서 여성의 몸은 슬픔을 연주하는 눈부신 악기였다. 전시에서 보고 온 것은 누드화인데, 마음속에 들리는 것은 그 수많은 몸속에 갇혀 꿈틀거리는 인간의 신음 소리, 사랑의 아픔, 온 세상의 아우성이었다.

    영국 국립미술관 테이트 명작전-누드
    소마미술관에서 12월 25일까지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10월 30일까지 휴관일 없음)

    입장료: 성인 1만3000원, 65세 이상 6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6000원. 인터파크와 티몬에서 입장권 할인 판매 중. 매주 월요일 '포토데이', 입장권 할인 이벤트

    문의: (02)801-7955, www.tate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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