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가 서구 近代 만든 힘… 우린 아직 멀었다"

    입력 : 2017.08.28 03:04

    ['근대로의 길' 펴낸 박지향 교수]

    가장 먼저 近代化 이룬 영국
    '자유·소유·권력' 세 요소 분산, 합리적인 시스템 속 개인 삶 보장
    "제도·경제는 압축성장 가능해도 지식·문화는 꾸준히 축적돼야"

    '근대화(近代化)'라는 용어는 이제 낡은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1970~80년대 동네 식료품점마다 붙어 있던 '근대화 연쇄점' 간판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근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탈(脫)근대'론이 지식사회의 유행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새 저서 '근대로의 길'(세창출판사)을 낸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근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근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입헌주의와 의회민주주의, 자본주의와 산업화, 신민(臣民)을 탈피한 시민(市民)에 의한 국민국가의 형성,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규칙을 존중하는 법치(法治)의 확립이죠." 여전히 법 같은 건 몇몇 목소리 큰 집단이 무시하는 우리 사회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2014년 한국연구재단의 석학인문강좌 강연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영국사 전공인 박 교수가 평생 천착한 핵심 주제를 담았다. '서양은 근대화에 성공해 지난 5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는데, 동양의 우리는 왜 실패했는가?'라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탈(脫)근대 담론이 일고 있지만 "괜히 심술을 부리며 그것을 나무라기 전에 도대체 그들이 무엇에서 성공했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냐"는 얘기다.

    박지향 교수는 “영국을 다녀온 한 지인이 ‘영국은 자신들의 위대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무서운 나라더라’고 했는데, 곱씹어 볼 말”이라고 했다.
    박지향 교수는 “영국을 다녀온 한 지인이 ‘영국은 자신들의 위대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무서운 나라더라’고 했는데, 곱씹어 볼 말”이라고 했다. /이명원 기자

    박 교수는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영국에 주목했다. 영국이 가졌던 강점은 ▲경쟁 체제가 이뤄낸 정치적·군사적 다원화 ▲지적 자유가 낳은 과학기술 ▲사유재산권이 주는 경제적 동기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열쇠는 '개인(個人)'의 존재였다. "자유, 소유, 권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분산돼 있었습니다. 그 덕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뜻대로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영국이 처음부터 자유로운 나라였거나 단기간에 개인의 자유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13세기 대헌장과 1640년대 청교도 혁명을 거치며 장구한 세월 동안 피를 흘려 가며 이뤄낸 성과였다.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의 절대왕정이 내부 견제 세력이 없는 가운데 과잉 팽창으로 쇠퇴한 것과는 달리, 영국은 광범위한 사회집단을 대변한 의회가 왕권을 제한하면서 사회를 자유롭게 하는 구심점이 됐다. 개인에게 노동과 아이디어의 대가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영국의 제도적 장치는 기술자에게 동기부여를 했고 산업혁명을 촉발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에선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륙에서 철수하는 영국군을 태우기 위해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선박을 동원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박 교수는 "자유를 보장받은 개인이 평등한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집단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책임감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는 "집단 지성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군중심리를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합리적 판단이 모여서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압축성장을 이뤘다고 해서 '곧 유럽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제도는 잘 이식될 수 있고 경제도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문화는 꾸준히 축적하며 국민의 기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지, 단기간에 발전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공한 나라'를 평가하는 기준은 경제력·군사력이 아니라 자유·소유·권력의 분산을 통해 국민들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역사상 그런 국가는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몇 나라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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