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이재용, 박근혜 독대서 명시적 청탁했다 볼 수 없어"]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黜黨)을 논의한다는 뉴스가 나온 날 한 분이 “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그는 친척 한 사람이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청와대에서 일했다고 한다. 인연이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봐왔다고 한다. 지지자까지는 아니어도 대선 때 그를 찍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참고 또 참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장수가 부하에게 책임을 미루느냐. 그것도 혁명가의 딸이…”라는 게 이분의 의문이었다. 필자는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보궐선거에 처음 당선됐을 때부터 봐왔다. 취재는 물론이고 인터뷰도 여러 번 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의 박근혜와 지금의 박근혜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많은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 원래 ‘바보’였던 듯이, 최태민과 최순실의 꼭두각시였던 듯이 알고 있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이 많고 명석한 사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웬만한 정치인보다 못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일반인의 생활양식과 동떨어진 모습, 권위적이고 너그럽지 못한 태도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반수 득표로 대통령이 된 것을 오로지 아버지 후광 덕으로만 본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박근혜만의 무엇’은 결국 ‘무사(無私)’였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 사리사욕을 취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았다. 부모를 다 잃은 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동생들과도 떨어져 사는데 개인적으로 추구할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다 죽었던 당(黨)을 국민에 대한 읍소로 살려내고 목 바로 옆에 칼을 맞고도 당 걱정을 했던 사람인데 ‘자신과 가족’이 ‘최우선’인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보았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간 뒤로는 볼 기회가 없었다. 들리는 얘기를 통해 보는 ‘박근혜’는 필자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심각해졌다. 그 결과가 모두가 보는 지금 이 상황이다. 하지만 어이없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한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박근혜의 ‘무사’가 어느 대목에선가는 나타날 것 같은 ‘미련’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필자에게 ‘박근혜는 어떤 사람이냐’는 물음을 던졌던 그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최순실 사태가 터진 이후 열 번도 더 있었던 고비마다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다음엔 다르겠지, 그래도 다음엔 다르겠지 했다”며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서는 모든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그 모습’은 검찰에 출두한 박 전 대통령이 자기 진술조서에서 틀린 것이 없는지 찾는다고 7시간이나 읽었다는 그 모습이다. 혹시 무엇이 잘못 적혀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토록 꼼꼼히 읽는 모습을 보고 ‘내가 알던 박근혜가 이런 사람이었느냐’는 배신감을 느낀 사람은 그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8가지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혐의 중에 어느 것이 무죄이고 유죄인지 곧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나는 모르고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모르고 지시한 적 없는데 기업들이 돈을 내 최순실이 실세가 되는 재단을 만들고 승마를 지원하고, 청와대 서류가 최순실에게로 가고, 최순실 뜻대로 공직 인사가 이뤄졌다면 대통령 아랫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이 모든 일을 부하들의 책임이라고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모든 피고인은 죄가 없다고 항변할 권리가 있다. 박 전 대통령도 그런 피고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박근혜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접었다는 그분은 “나는 박근혜가 ‘모든 책임은 내게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시킨 대로 한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고 했다. ‘모든 책임을 부하가 아닌 나에게 물으라’는 것은 리더십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게 없으면 리더가 아니다. 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전부 무죄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어떤 경우엔 아랫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 뜻을 오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잘못이 있다면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해야 했다. 그게 ‘대통령’이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나는 모른다’면서 수갑 차고 구치소와 재판정을 수십 번 오가는 것을 보면서 한 가닥 미련을 버렸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아직도 당적을 갖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웠던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은 “내가 아는 박근혜는 죽고 사는 것 정도는 초월한 사람 같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 박근혜는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데 메아리만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