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물가 껑충… 1파운드라도 아끼려 싼 곳만 골라다녀

    입력 : 2017.08.24 03:06

    [브렉시트 결정 이후의 일상… 장일현 특파원 현장 르포]

    식료품·잡화 대부분 수입하는 英, 환율 급락에 물가 상승률 3% 육박
    저가 마트 이용 크게 늘어나고 저축은 통계조사 이후 가장 낮아
    당연하게 여기던 2주 휴가도 이젠 3일 전후로 가는 게 대세

    장일현 특파원
    장일현 특파원

    영국 중부 뉴캐슬에 사는 은행원 크리스티나 카(28)씨는 최근 식료품 구입 마트를 세인즈베리와 아스다에서 저가(低價) 수퍼마켓 체인인 리들과 알디로 바꿨다. 영국 식품·잡화 가격은 주요 수퍼마켓 체인 중 웨이트로즈와 막스앤드스펜서가 가장 비싸고, '빅 4'로 불리는 테스코·세인즈베리·아스다·모리슨이 중간 정도이며, 알디·리들이 가장 저렴하다. 카씨는 "남편과 둘이 살면서 일주일에 60파운드(약 8만7000원)를 식료품 구입에 쓴다"며 "이 돈으로 고기와 야채, 과일, 빵 등을 고루 사려면 저가 마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학창 시절 알디에서 물건을 사면 학교에서 가난한 집 애라고 놀림을 받아 지금까지 저가 마트를 한 번도 간 적이 없지만, 요즘은 물가가 너무 올라 남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고 했다.

    영국이 지난해 6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한 이후 국내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이 값싼 식료품을 찾아 대이동을 하고 있다.

    런던 남부 투팅 브로드웨이 지역에 있는 저가 마트 매장은 작년 하반기 이후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 인근에 있는 세인즈베리에선 우유와 달걀, 빵, 콘플레이크 등을 구입하려면 4.70파운드(약 6800원)가 들지만, 저가 매장에선 3.92파운드(약 5700원)면 살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작은 가격 차이가 영국 소비자들의 행태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저가 매장에 오전부터 긴 줄 - 영국은 지난해 6월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해 수입 물가가 빠르게 올랐다. 고(高)물가가 서민들 어깨를 누르면서 저가형 식료품 체인점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사진은 작년 10월 영국 레스터 지역에 새로 문을 연 저가형 식료품 체인점 ‘알디’ 앞에서 시민 200여명이 줄을 선 모습.
    저가 매장에 오전부터 긴 줄 - 영국은 지난해 6월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해 수입 물가가 빠르게 올랐다. 고(高)물가가 서민들 어깨를 누르면서 저가형 식료품 체인점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사진은 작년 10월 영국 레스터 지역에 새로 문을 연 저가형 식료품 체인점 ‘알디’ 앞에서 시민 200여명이 줄을 선 모습. /SWNS

    '알뜰 소비자'들이 늘면서 저가 상품을 다루는 업체들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칸타르 월드패널이 22일(현지 시각) 내놓은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8월 영국 전체 식료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 늘었는데, 리들과 알디의 매출은 각각 18.9%와 17.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도 작년 같은 기간(10.7%)에 비해 1.5%포인트가 높아진 12.2%를 기록했다.

    영국 주부들이 이처럼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해진 건 올 들어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료품 등을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브렉시트 결정으로 파운드 환율이 10% 이상 떨어지면서 각종 수입 물가가 크게 뛴 것이다. 작년 8월까지만 해도 0.6%에 불과했던 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 2.9%까지 치솟았다. 올해 전체로는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을 전망이다. 칸타르 월드패널은 "올해 영국 소비자들은 식료품 구입에 가구당 평균 133파운드(약 19만원)를 더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치솟는 영국 물가 상승률 그래프

    2주짜리 장기 해외여행을 선호했던 영국인들의 휴가 패턴도 짧은 여행으로 바뀌는 추세다. 일간 더타임스는 "영국의 전통적인 2주 휴가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작년 해외여행을 간 영국인 4500만명 중 2주 휴가를 즐긴 사람은 375만명(8.3%)에 그쳤다. 20년 전인 1996년 전체 해외여행객 2700만명 중 540만명(20%)이 2주 휴가를 간 것에 비해 크게 줄었다. 대신 2~7일 정도의 짧은 해외여행이 유행하고 있다. 3일짜리 단기 여행을 간 사람은 지난 1996년 130만명에서 작년 430만명으로 3배 이상이 됐다.

    소비 패턴 역시 바뀌고 있다. 각종 여가·문화 생활은 줄이고, 옷·가구 등 당장 급하지 않은 지출은 되도록 자제하는 식이다. 신용카드 회사인 '비자'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영국인들이 문화 활동과 레크리에이션에 쓴 비용은 전년 같은 시기보다 1.2% 줄었다. 비자 관계자는 "지난 2013년 이후 4년 만에 처음 있는 현상"이라며 "영국인들이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는 '알뜰 소비자'로 변신하고 있다"고 했다.

    저축을 하는 사람도 줄고 있다. 영국인들은 1963년 통계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적은 돈을 저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간 가디언은 "영국인 5명 중 2명은 한 달에 10파운드도 저축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로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당장 쓸 돈이 없으니 신용카드로 쓰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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