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경보 울리자… 학생들은 지하시설 아닌 운동장에 모였다

    입력 : 2017.08.24 03:06 | 수정 : 2017.08.24 09:34

    [민방공 훈련]
    취약한 학교들, 지하 대피시설 거의 없고 당국은 실태 몰라

    대부분 운동장·1층 현관 대피, 아예 훈련 하지 않은 곳도
    교육청 안전 매뉴얼도 오류… 지하시설 없을때 1층으로 유도
    전문가들 "주변 건물 지하를 대피소로 지정해 훈련케 해야"

    북한의 장사정포·미사일 등의 공격에 대비하는 민방공 대피 훈련이 열린 23일 오후 2시. 직장과 거리에 있던 어른들은 정부가 만든 비상시 국민행동요령 매뉴얼에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평균 깊이가 15m인 지하철역이나 건물의 지하 4~5층 정도면 여러 겹의 콘크리트가 폭발의 충격을 충분히 막기 때문에 공습 땐 가장 안전하다.

    그런데 상당수 학교에선 학생들을 이날 건물 1층이나 운동장에 모이게 했다. 아예 훈련을 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소방방재청 공보관을 지낸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적의 폭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운동장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라면서 "건물 1층에 머물러도 공습이나 화생방에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울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100만여 명이 유사시 적의 공격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교 민방위 매뉴얼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습경보인데 운동장으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한 초등학교에 공습경보가 울리자 교사 10여 명이 학생 150여 명을 데리고 운동장 옆 스탠드로 갔다. 개학일이라 학생 대부분은 4교시 수업만 마치고 귀가한 상태였다. 훈련에 나선 150여 명은 방과후교실에 참가하던 1~6학년 학생들이었다. 민방위 담당 교사는 운동장 스탠드를 지정 방공호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 23일 오후 2시 민방공 대피훈련이 실시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와 운동장 옆 스탠드로 이동해 앉아 있는 모습. 학교가 북한의 장사정포·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운동장은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곳이다. 반드시 건물 지하나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 23일 오후 2시 민방공 대피훈련이 실시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와 운동장 옆 스탠드로 이동해 앉아 있는 모습. 학교가 북한의 장사정포·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운동장은 가장 위험에 노출되는 곳이다. 반드시 건물 지하나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조인원 기자
    동대문구의 한 중학교에선 학생들이 교실에 대기하고, 교사들만 운동장으로 나가는 훈련을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여자중학교는 21일 대피 훈련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에 비상시 대피 경로 지도를 넣으면서 대피 장소가 운동장이라고 안내했다.

    정지범 유니스트(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주변이 탁 트인 운동장은 지진이 났을 경우에만 대피하기 적당한 장소"라고 했다. 정부도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을 지진 대피소로 지정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민방위 안내 방송만 하고 대피 훈련을 하지 않았다. 성동구의 한 유치원은 2시 정각 사이렌이 울리는데도 2층 교실에 있는 원아 10명에게 수업을 진행했다. 동대문구의 한 유치원은 건물 뒤편 지상 주차장에 모이는 것으로 훈련을 대체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치는 것에 민감하다"면서 "아이들을 수십 명씩 인솔해 대피 장소까지 급히 이동하다 누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고 했다.

    ◇학교 민방위 매뉴얼 고쳐야

    본지가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45곳에 문의한 결과, 지하 대피 시설이 있는 학교는 6곳에 불과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학교는 지하 1층 식당으로 전교생 660명을 대피시켰다. 은평구의 중학교 두 곳은 전교생을 인근 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했다.

    하지만 서울시내 상당수 학교는 민방위 훈련 때 학생들을 교실 밖 복도나 1층 현관으로 대피시켰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학교에 지하실이 없어 부득이하게 1층으로 이동시켰다"고 했다. 용산구의 한 고등학교는 전교생 480명을 1층 복도에 모이도록 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안전 매뉴얼에 따르면 지하시설이 없는 학교는 1층 현관·복도·교실·건물과 건물 사이·뒷산 등을 대피 장소로 지정하게 되어 있다. 교사들은 공습이 멈추거나 중단된 경우 지정된 대피 시설이나 인근 건물의 지하로 학생들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때 서로 다른 학급의 학생들이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인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항목이다.

    학생들이 복도나 1층 현관으로 대피하는 것에 대해 김태환 용인대 경호학과 교수는 "현재 학교의 공습 대피 매뉴얼은 잘못됐다"면서 "특히 수도권은 학교 주변에 건물이 많기 때문에 지하를 대피소로 지정해 훈련하는 내용을 매뉴얼에 꼭 담아야 한다"고 했다.

    학교 민방위를 주관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지하시설이 있는 학교가 몇 개인지, 인근에 대피소를 지정한 학교가 몇 개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청 관계자는 "빠른 시일 안에 전수조사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키워드정보]
    민방위 훈련 사이렌 듣고 '멘붕'한 외국인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