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親美로 돌아선 인도·베트남

    입력 : 2017.08.24 03:12

    안용현 국제부 차장
    안용현 국제부 차장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는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동맹 노선을 내걸고 미·소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그러나 1971년 '앙숙'인 파키스탄과 전쟁할 때 미국이 파키스탄을 돕자 반미(反美)로 돌아섰다. 인도는 소련과 협력을 강화해 미국·파키스탄 유대를 견제했다. 미국은 인도가 1974년 1차 핵실험에 이어 1998년 2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강력한 제재로 인도를 압박했다.

    냉기가 돌던 미·인도 관계는 소련 붕괴와 중국 굴기(崛起)를 겪으며 급변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와 대(對)테러 전쟁 등을 위해 인도와의 군사 협력이 필요했다. 1962년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 전쟁했던 인도는 소련을 대체할 우군을 원했다. 그 결과 미국은 2006년 인도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핵 협정을 인도에 선물했다.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인도의 최대 무기 공급국이 됐다. 2014년부터는 인도양에서 미국·인도·일본 해군이 중국을 겨냥해 대규모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인도는 히말라야 국경에서 중국과 다시 무력 충돌할 조짐이 보이자 산악전 부대를 미국에 보내 훈련시켰다.

    미국과 험악한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도 오랜 원한을 뒤로하고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14년 미 합참의장의 방문을 43년 만에 허락했다. 당시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은 호찌민시(市)에서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베트남과 미국은 미 항공모함의 베트남 기항에도 42년 만에 합의했다. '원수'였던 미·베트남의 밀월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 굴기가 가져온 것이다.
    인도-부탄 국경 지대에서 군사 훈련중인 중국 인민군. /CCTV 캡처
    인도는 1962년, 베트남은 1979년 각각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중국이 영토와 안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며,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오는지를 피값을 치르고 배웠다. 우리도 6·25 때 중국과 싸웠다. 중국이 1950년 6·25에 참전하고, 1962년 인도와 전쟁하고, 1979년 베트남을 선제공격한 이유는 모두 같다.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야 한다는 독특한 판단 때문이었다. 중국이 방어 무기인 사드에 대해 "중국의 전략적 이익 침해" 운운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반미'였던 인도와 베트남이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좋아져서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양국이 빠르게 '친미'로 돌아선 시점은 2013년 시진핑 중국 주석이 '중화 민족의 부흥'을 내걸고 집권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인도와 베트남은 중국이 근육을 자랑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역사적 경험으로 안다. 우리는 중국 굴기에 북한 핵 위협이라는 이중고(二重苦)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서울에선 한·미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주한 미국 대사관을 포위하려는 세력들이 거리를 누볐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서도 인도와 베트남이 변심(變心)한 이유를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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