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사참배 거부하다 殉敎… 주기철 목사, 연세대 명예졸업장 받는다

    입력 : 2017.08.23 03:05 | 수정 : 2017.08.23 09:22

    1916년 연희전문 商學科 입학… 3·1운동 후 목회자로 진로 바꿔
    25일 학위수여식서 졸업장 받아

    주기철 목사가 막내아들 광조를 안고 있다. 25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는 주광조 장로의 아들 주원씨가 유족을 대표해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주기철 목사가 막내아들 광조를 안고 있다. 25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는 주광조 장로의 아들 주원씨가 유족을 대표해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주기철 목사 유족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광복을 1년 앞두고 감옥에서 순교(殉敎)한 소양(蘇羊) 주기철(朱基徹·1897~1944) 목사가 입학 101년 만에 연세대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연세대(총장 김용학)는 22일 "1916년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 상학과(商學科)에 입학했다가 심한 안질(眼疾)로 1년 남짓 만에 중퇴한 주 목사에게 오는 25일 학위 수여식에서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 출신인 주기철 목사는 1916년 평북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그해에 연희전문 상학과에 입학했다. 안질을 앓다 중퇴한 주 목사는 고향에서 애국운동을 벌이다 3·1운동에 참가한 후 목회자로 진로를 바꾼다. 1922년 평양신학교에 진학해 1925년 목사 안수를 받은 주 목사는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를 거쳐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1938년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강력히 거부하면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다 1940년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돼 복역하던 중 1944년 옥사(獄死)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개신교계 대표적 애국지사다.

    그의 항일애국활동은 최근 영화 '일사각오'를 비롯해 다양하게 소개됐으나 연희전문 상학과 입학 사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탄압받는 상황에서 주 목사가 많은 자료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사 연구 권위자인 민경배(83) 연세대 명예교수는 "주 목사가 상학과에 진학한 이유를 직접 밝힌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주기철 목사의 연희전문 학적부. 광무원년(光武元年·1897) 출생했다는 기록과 오산학교 졸업 학력, 종교란에 ‘장로교’ ‘세례(신자)’라고 적혀 있다.
    주기철 목사의 연희전문 학적부. 광무원년(光武元年·1897) 출생했다는 기록과 오산학교 졸업 학력, 종교란에 ‘장로교’ ‘세례(신자)’라고 적혀 있다. /연세대

    민 교수는 그러나 "당시 개신교의 중심이었던 오산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본의 경제적 수탈에 대항해 민족 자본을 육성하고 경제 자립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상학과에 진학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1915년 개교한 연희전문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위계질서가 고착돼 있던 시절에 상학과를 수석(首席) 학과로 내세우는 혁신으로 당시 경제 입국을 꿈꾸던 식민지 청년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는 설명이다. 주 목사와 연세대 상경대의 인연은 아들, 손자, 증손자녀까지 4대에 걸쳐 이어졌다.

    주 목사에 대한 명예 졸업장 수여는 연세대 신과대와 상경대의 '합작품'이다. 민경배 명예교수 등이 자료를 수집했고, 유영권 신과대 학장이 발의, 홍훈 상경대 학장이 추천해 심사를 거쳐 명예 졸업장 수여가 결정됐다. 25일 학위 수여식에서는 주기철 목사의 손자 주원(흥국증권 대표)씨가 유족을 대표해 명예 졸업장을 받을 예정이다.


     

    [학교정보]
    1957년 통합된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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