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경제정책, '정부 주도'라는 적폐는 안 없애나

조선일보
  •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입력 2017.08.23 03:17

    세계 100대 스타트업 보니 美 56, 中 24곳, 우린 全無
    규제 탓에 창업 어려운데 기업에 부담되는 정책까지
    정부가 경제정책 주도하는 舊態 벗어야 재도약 가능해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 前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안타깝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잘하는 부분도 많지만 치명적으로 잘못하는 부분이 있다. 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까? 새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성경륭 교수 등 진보 경제학자들이 최근 펴낸 '포용국가'라는 책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 책은 재벌과 대기업 등 소수의 강자가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불균형을 시정하고 약자를 지원함으로써 모두가 잘사는 포용국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 방법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 현실을 잘못 진단해서 빚어진 하자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신자유주의 노선을 가진 나라라고 진단한다.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없는 나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는커녕 자유주의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미국 시장 조사 기관 CB인사이츠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미국 기업이 56개, 중국 기업이 24개인데 우리나라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또한 이런 외국 스타트업 중 7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규제 때문에 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한다. 정부 규제 때문에 혁신도 없고 창업도 어려운 우리나라를 이 책은 신자유주의 국가로 본다. 기업인들은 적어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만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데 이 책은 우리 기업들이 과분한 자유를 가지고 있는데 무슨 규제 완화가 필요하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일한 적 있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최근 저서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서 '우리나라 진보층은 독특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어요. 매우 국가 주도적이고 규제 일변도이며 시장에 아주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국유화를 좋아하고 일괄 금지 같은 과도한 규제를 선호합니다. (중략) IMF 위기 이후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한국이 신자유주의를 했다고들 하는데 말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정부 규제가 아직도 얼마나 강한데!'라고 썼다. 선진국에선 민간 경제활동이 이미 자유화돼 있다. 우리나라만 유독 규제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이라는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는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기업들에 경제적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이 없다.

    /조선일보 DB
    더 나아가 새 정부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과감히 사용하고 있다. 특정한 고용 형태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가격과 임금에 간여하고, 세계적 추세에 어긋나게 법인세도 충분한 논의 없이 올리려 한다. 독과점 산업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먼저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거나 담합 규제 강화 등 독과점 폐해를 시정하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격 개입은 언제나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주진형은 또 말한다. '시장경제 반대편에 누가 있나요? 관료와 독과점 재벌이 있거든요. 이 두 세력이 기득권을 위해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막아요. 시장경제를 더 도입하자는 말 자체가 재벌과 관료 위주 경제 운용 체제를 깨는 효과적인 수단인 데도 우리나라 진보는 (이를) 아예 배제하고 시작합니다. 앞으로 한국의 진보층이 확실하게 극복해야 할 사고 체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 새 정부가 시장경제 원칙을 배제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또한 만약 새 정부가 그동안 기업이 신자유주의 아래서 과도한 혜택을 누렸다고 인식하고 기업을 포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말 걱정스럽다. 새 정부가 지향한다는 유럽식 모델도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서 불균형 등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결코 시장경제를 배제하는 모델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큰 정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면 안 된다.

    경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세 가지만 충족되면 골고루 발전하게 되어 있다. 첫째, 불공정 행위를 예외 없이 처벌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민간이 창의와 열정을 가지고 아무 걱정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없앤다. 셋째, 어려운 이들을 잘 배려하고 보호해준다. 유럽식, 특히 노르딕 모델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잘한다. 영·미 모델은 세 번째가 약하다. 새 정부는 첫째와 셋째는 적극적으로 하려는 것 같은데 둘째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거꾸로 갈 우려도 있다. 둘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경제는 활력을 찾을 수 없다. 논쟁이 필요 없는, 정해진 미래다. 부디 새 정부의 시각이 늦지 않게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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