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불천위 제사가 300년만에 저녁으로… 육해공 '3種肉'이 우주 표현

    입력 : 2017.08.19 03:02

    의성金氏 천전파 제사 현장엔

    청계종택 年 약 25회 제사… 子正 제사 참석 늘리려 300년만에 저녁으로 바꿔
    제물 올리는 진설→출주… 사당에서 신주 모시고 와 후손들 함께 參神→降神

    지난 5일 저녁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의성김씨 천전(川前)파 종갓집인 청계종택에서 도포를 입고 갓과 유건을 쓴 중년 남성들이 분주하게 제사상을 준비했다. 음력 6월 14일인 이날은 천전파 중시조(中始祖)인 청계공 김진(1500~1580)의 부인 여흥 민씨의 불천위(不遷位·영구 보관하는 위패) 제삿날이었다.

    불천위 제사는 고조(高祖)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유교식 제사 예법(4대봉사)의 예외다. 유교에서는 제사가 5대째로 넘어가면 오세즉천(五世則遷)을 적용해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큰 공을 세웠거나 학문과 덕이 높은 이에 한해 영구히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허락한다. 일 년에 제사가 수십 번 되는 종갓집 이야기는 대부분 불천위로 지정된 조상이 많은 곳이다. 청계종택에서는 시조인 청계공과 그 부인의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 두 사람은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한 덕에 불천위로 지정됐다. 종갓집 건물은 오자등과택(五子登科宅)으로 불린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선조 때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와 "왜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던 학봉 김성일(1538~1593)이 넷째 아들이다. 5형제는 경북 일대에 종택과 집성촌을 이뤘고 현재 전국에 후손 5만 명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여자, 제사상 차림은 남자 몫이다.
    문과 급제 24명, 생원 진사 64명을 배출한 안동 청계종택은 300여년 동안 고수한 불천위 제사 시각을 올해부터 저녁으로 옮겼다. ①음식을 만드는 것은 여자, 제사상 차림은 남자 몫이다.
    16대 종손 김창균(64)씨는 제사를 준비하는 중간 "오늘 청계할매(청계공 부인) 불천위 제사인 거 알제? 안 늦게 시간 맞춰서 와래이"라며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지손(支孫)들이 알아서 오지만 오늘은 지손 집에 초상이 두 곳이나 있어서 제관(祭官)이 적을 것 같아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참석자 명부인 시도록(時到錄)을 쓰고 제관마다 역할을 나누는 분정(分定)을 했다. 다른 제사에 비해 불천위 제사는 참석자가 많기 때문에 미리 제사 순서에 따라 역할을 나눈다. 이날은 종손의 우려대로 평소보다 적은 스무 명 정도가 제관으로 참석했다. 오후 8시쯤 날이 더 어두워지자 제기와 제물을 상에 올리는 '진설'을 시작했다. 과일, 떡과 함께 세 종류의 탕을 올린다. 각각 다른 고기를 사용한 육탕(肉湯), 어탕(魚湯), 계탕(鷄湯)을 준비한다. 양반집은 삼탕, 평민집은 단탕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제사를 지내는 문중마다 다르다. 세 종류 고기는 '도적(都炙)'이라는 제물에도 쓰인다. 가장 아래에 생선, 가운데 돼지고기나 소고기, 상단에 날짐승 고기를 겹겹이 쌓아 만드는 제물로 가문의 위세를 나타내고 하늘·땅·바다로 구성된 우주 질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제사 음식 준비는 모두 여자들이 하지만 음식을 제기에 쌓고 상에 올리는 일은 모두 남자가 한다. 주방에서 제물 준비를 하던 여자들에게 음식 준비에 관해 묻자 "이야기는 저쪽 남자분들께 들으세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종손은 "제사 준비 과정에서 남녀 역할이 엄격히 구분되는 게 사실"이라며 "더운 날씨에 나물과 고기를 삶는 주방에서 고생이 많다"고 했다.

    생선, 돼지고기·소고기, 닭고기를 순서대로 쌓아올린 도적은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생선, 돼지고기·소고기, 닭고기를 순서대로 쌓아올린 도적은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종손이 조상한테 첫 잔을 올린다.
    종손이 조상한테 첫 잔을 올린다.
    자정 지나서 올리는 제사를 저녁 제사로 당겼더니 제관들은 폭염으로 땀을 뻘뻘 흘렸다.
    자정 지나서 올리는 제사를 저녁 제사로 당겼더니 제관들은 폭염으로 땀을 뻘뻘 흘렸다.
    진설이 끝나고 종손이 종택 뒤 사당에서 신주를 가져오는 출주(出主)와 함께 제사가 시작됐다. 신주를 가져온 다음 후손들이 조상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모두 함께 두 번 절하는 참신(參神), 종손이 분향하고 좌우 집사로부터 술을 받아 붓고 절하며 신을 강림케 하는 강신(降神)이 이어졌다. 강신으로 조상신을 모시면 분정에서 정한 역할과 순서에 따라 술을 올리는 초헌·아헌·종헌을 진행한다. 술을 올린 다음 조상신께 식사를 권하는 유식(侑食)과 조상신을 보내드리는 사신(辭神)을 마치고 종손이 제사 시작 때 가져온 신주를 다시 사당에 돌려놓는 동안 나머지 제관들은 상을 거뒀다. 2시간쯤 걸려 제사를 끝내자 제관들은 음복하며 문중 대소사와 근황 소식을 나눴다.

    청계종택은 불천위 제사 2번, 4대조까지의 기일 제사, 명절 차례 등을 포함해 1년에 약 25번 제사를 지낸다. 이날 대구에서 온 16대 지손 김도국(61)씨는 "종손이 일년 내내 고생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제사에 꼭 참여해서 돕는다"고 했다. 이날도 종손은 중국에 가는 일정을 미루고 제사를 주관했다. 청계종택은 불천위 제사 참여를 늘리기 위해 지난 1월 문중 회의에서 불천위 제사를 자시(子時, 23시~1시)에서 저녁 제사로 바꿨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지난 4월 말 조사에 따르면 불천위 제사를 올리는 176곳 중 106곳(60%)이 자시에서 저녁이나 오전으로 시간을 바꿨고 그 중 10곳은 기일이 아닌 특정일로 제삿날을 옮겼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은 "안동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종갓집들도 시대에 맞게 제사를 바꿔가고 있다"며 "제사 시간뿐 아니라 4대봉사를 2·3대까지만 제사를 지내기로 바꾼 종갓집도 마흔 곳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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