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手)' 아닌 '백수(百手)'...아름다운 일을 하는 손이 100개.

    입력 : 2017.08.15 16:01 | 수정 : 2017.08.15 18:16

    부산의 모임인 '아름다운사람들' 권경업 이사장

    지난 달 29일 라오스 사바타켓주 짬폰군에 있는 오지마을 깜빠내빌리지에서 열린 '깜바내여민락자선모자병원' 기공식에 참석한 권경업 '아름다운사람들'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라오스 정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사람들' 제공


    이 사람, 참 재밌다. ‘지공거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 이상 노년에 대한 별칭)’의 연배인데 청바지에 야구모자 차림으로 다니길 즐긴다. 때론 하늘 색 린넨 정장에 나비 넥타이, 때론 등산모자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패션모델 뺨치는 옷맵시를 자랑한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심한 경상도 사투리. 얼굴을 보지 않아도 말소리만 들어도 담박 누군지를 알 수 있다.
    산악인, 시인, 돼지국밥집 사장, 사회사업가, 백수…. 직업도 다양하다. 아니 다양했다. 30년 가까이 지역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 등의 봉사를 하고 있는 단체, ‘㈔아름다운 사람들’의 권경업(65) 이사장이다. 권씨는 “요즘 돼지국밥집 사장은 아내”라며 “그러니 지금의 내 직함은 사회사업가 정도가 맞을 것 같은데…”라고 했다. 그는 또 “음…. 사회사업가, 시인 등 모두 돈이 안되니 ‘백수’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라며 웃었다.
    그런데 그의 ‘백수’는 ‘백수(白手)’가 아니다. ‘백수(百手)’다. ‘아름다운 일’을 하는 손이 100개쯤 되기 때문이다. 권 이사장은 지난 달 말 라오스 사바나켓주 짬폰군 ‘깜빠내빌리지’에서 자선병원 기공식을 했다. ‘아름다운사람들’과 부산의 약사들 모임인 ‘여민락’이 라오스의 오지마을인 이 곳에 짓고 운영할 병원이다. 병원은 30병상 규모로 건립된다.
    ‘아름다운사람들’과 ‘여민락’은 지난 2015년 10월에도 라오스 북부 시엥쿠앙주 오지인 분틴 지역에 ‘분틴-여민락 모자병원’의 문을 열었다. 2년째 운영 중이다. 이 병원은 작년 한해 주변 지역 여성과 아이들 5000여명을 진료했고, 70명의 신생아를 받았다. 권 이사장은 “분틴병원은 라오스 안 지역병원들의 ‘운영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사람들’은 또 지난 2011년엔 주변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네팔 체플룽 지역에 115㎡ 규모의 ‘토토하얀병원’을 개설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사람들’은 당시 식당을 운영하던 권씨가 1989년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정문 옆에서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를 한 이후 만들어진 단체. 100여명의 후원회원으로 이뤄져 있다. 권씨는 “부산에서의 노인 무료급식 봉사는 우리가 처음이었고, 가장 오래됐다”고 말했다. 요즘 어린이공원 무료급식엔 부산은행 노조, 초읍동 새마을부녀회 등 지역 26개 단체가 동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씨는 산악인, 시인이기도 하다. 1982년 부산 최초로 히말라야를 원정했다. 산을 소재로 산에서 쓰는 ‘산악시’란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산을 걸으면서, 침낭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면서 시를 썼다”고 말했다. 발간한 시집이 17권에 이른다. “산 꼭대기에서 만나는 건 공허한 하늘 뿐이요. 그래서 산행은 하늘에 다가가는 거요. 생각해보소. 큰 길을 통해선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요. 꼭대기로 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가팔라지는 법이고. 그 좁은 길, 가파른 길을 오르려면 몸을, 자신을 줄이고 비워야 합디다. 난 인생도 그렇다 생각하요.”
    그는 ‘산에 오름’을 통해 이를 체득했다. 10여년간 네팔에, 라오스에 병원 짓는 일을 ‘주동’한 것, 28년간 노인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직업은 천상, 사람좋은 ‘百手(백수)’다. 그렇다고 이 ‘백수’의 ‘업’이 큰 길, 탄탄대로를 거쳐 이뤄진 건 아니다. 속히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오해받기도 했다. 언젠가는 정치판에 얽혀들 뻔도 했다.
    권씨는 “이리저리 맺어진 업, 버리지 못한 작은 욕심들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며 “인자는 더 많이 비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변하는 세상은 여전히 녹록찮고 팍팍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멈추지 않는 욕망과 욕심이 꿈틀대고 격동한다. 때문에 라오스 등의 병원, 무료 급식 봉사가 또 다른 분란을, 풍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비웠다”는 그가 더 가야 할 ‘百手(백수)의 길’은 앞으로도 순탄한 ‘대로(大路)’만이 아닐 공산이 크다. 아니 좁고 가파른 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어코 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만나고야 마는 길…./부산=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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