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상 시상식에 "구호팀 7명 피살" 悲報가 날아왔다

    입력 : 2017.08.14 03:11

    [2017 만해대상]

    시리아 구호단체 '하얀 헬멧' 대표, 동료 피습사진 보고 눈물

    -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비극
    휴대폰으로 현장과 논의하느라 시상식장서 수상 호명 못듣기도

    - "숙소가 아니라 공항 가주세요"
    동료가 "암살 위험" 만류해도 일정 취소하고 급히 시리아로

    - 시리아 내전서 10만명을 구했다
    "만해 선생이 글로 희망 전했듯 하얀 헬멧도 구조로 희망 전파"

    "오, 신이시여!" 12일 오후 1시 30분 강원도 인제 만해대상 시상식장으로 가는 차 안. 제21회 만해평화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시리아 구호단체 '하얀헬멧(The White Helmets)'의 대표 라이드 알 살레(33)의 얼굴이 갑자기 잿빛이 됐다. 내전 중인 시리아 현장에서 하얀헬멧 동료가 급히 보내온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나서였다. '괴한 기습 총격! 하얀헬멧 사르민(시리아 북부 이들립주의 한 도시) 지부 대원 7명 피살. 차량·통신 장비 등 구조장비 도난.'

    평화상 꽃다발과 동료의 장례식
    평화상 꽃다발과 동료의 장례식 - 시리아 민간구호단체 '하얀헬멧' 대표 라이드 알 살레(위 사진)가 12일 오후 만해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이날 시상식장으로 이동하던 중 시리아 현지로부터“대원 7명 피살”이란 급보를 받았다. 시상식장 단상에 앉아서도 휴대폰으로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수습 대책을 지시하던 그는 결국 이날 밤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시리아 현지로 날아갔다. 아래 사진은 이날 살해된 하얀헬멧 대원 7명의 장례식이 시리아 현지에서 치러지고 있는 모습. /조인원 기자·EPA 연합뉴스
    살레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떨궜다. "흑흑…."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간 전투기 공습이나 폭탄 테러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하다 대원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하얀헬멧 구조센터가 공격 대상이 된 건 이례적이다. 하얀헬멧은 시리아 내전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인명 구조가 필요하면 무조건 달려가는 초정파·중립 단체로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모두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후 2시 시상식장에 도착했지만 살레는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10여분간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차 문을 열었다. 시상식장에 들어서 제인 구달 박사(실천대상)·클레어 유 UC 버클리 한국학센터 상임고문(문예대상) 등 다른 수상자를 만나 인사를 나눴지만,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살레는 행사가 진행되는 2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만 매만졌다. 시리아 현장의 대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보고받고 수습 대책 등을 지시했다. 영문을 모르는 일부 참석자 사이에서 그런 살레를 보고 "상 받는 좋은 날 저 사람은 왜 저래?" "행사 중에 휴대폰을 쓰다니, 에티켓을 모르나 봐?"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사회자가 "수상 소감을 들어보겠다"며 살레를 호명했지만, 그는 듣지 못하고 시선을 휴대폰 화면에 계속 두고 있었다. 이날 총격에 숨진 동료의 시신 사진이 그의 휴대폰에 전송된 순간이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서 그의 무릎을 쳐주자 그제야 자기 차례가 왔음을 알고 일어나 무대에 올랐다. 소감을 말했다. 키 180㎝, 몸무게 100㎏인 체격에 비해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2011년 내전이 발발하고 나서 밤마다 침대에 누우면 '로켓이 지붕에 떨어지진 않을까'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안전한 걸까' 걱정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전쟁은 삶을 무너뜨렸고 인간성을 흐렸습니다. 절망에 맞서기 위해 2013년 무렵 하얀헬멧이 결성됐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사고 현장에 출동해 지금까지 10만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약 100년 전 만해 선생이 옥중에서도 글이라는 비폭력 활동으로 한국인에게 희망을 줬듯이, 하얀헬멧도 총이 아니라 '들것'을 선택하며 구조 활동을 통해 시리아인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레가 소감을 마치고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숙연해진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얀헬멧 대원 피살 사건이 BBC, 알자지라 등 외신에 하나 둘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는 시상식을 마치고 이날 저녁 서울로 가는 길에도 관련 일 처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살레, 누가 우리를 공격했는지 모르겠어. 다들 공포에 빠져 있어." 시리아 현장에서 살레의 휴대폰으로 전달된 동료의 음성 메시지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시리아 민간구호단체 '하얀헬멧' 라이드 알 살레 대표가 12일 백담사에서 아랍어로 '시리아에 평화를'이라고 쓴 기와.
    백담사 기와에 시리아 평화 새겼는데… - 시리아 민간구호단체 '하얀헬멧' 라이드 알 살레 대표가 12일 백담사에서 아랍어로 '시리아에 평화를'이라고 쓴 기와. /조인원 기자
    살레는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대신 하얀 헬멧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호텔이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으로 지금 바로 갈 수 있을까요?" 14일까지 잡았던 나머지 한국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날 자정 항공편으로 돌아가기로 계획을 급변경한 것이다. 그는 "지금 하얀헬멧 리더가 시리아에 들어오면 암살당할 위험이 있다"는 동료의 우려에도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거기로 갈게"라고 했다.

    그는 이날 자정 한국을 떠나기 전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시상식에 앞서 이날 오전 '만해 사상의 고향' 백담사에 들렀을 때 아랍어로 발원 문구를 적은 기와를 든 모습이었다. '리수리야 앗살렘(시리아에 평화를).'

    [나라정보]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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