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스프린터…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

    입력 : 2017.08.14 03:05

    '황제' 볼트, 마지막 경기인 세계선수권 400m 계주서 근육 경련으로 트랙에 쓰러져
    "원했던 마지막 모습 아니지만 모든 걸 트랙에 바쳐…"
    10년간 단거리 육상 역사 바꿔… 100m 기록은 난공불락으로 남아

    누구도 이런 끝을 원하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프린터의 '고별전'이었기에. 해피엔딩이 무너지고 악몽 같은 결말이 찾아오자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있었다. 그렇게 단거리의 레전드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가 트랙을 떠났다.

    볼트는 13일(한국 시각)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선(영국 런던)에서 자메이카의 마지막 4번 주자로 레인에 섰다.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레이스 전, 볼트는 언제나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런던 스타디움을 찾은 5만6000 관중은 '인간 번개'의 마지막 모습에 환호했다.

    총성과 함께 각 팀 선두 주자가 출발했다. 세 번째 주자 요한 블레이크(28)가 볼트에게 바통을 넘겼을 때, 자메이카는 영국·미국에 이어 3위였다. 비극은 이때 시작됐다. 평소라면 볼트가 화려한 역전극을 펼쳤을 테지만, 이날은 달랐다. 성큼성큼 40m쯤 달린 볼트는 갑자기 왼발을 절뚝거렸고 트랙에 나뒹굴었다. 왼쪽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이상이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이 경쟁자 7명이 차례로 골인했다. 홈팀 영국(37초47)이 금메달을 걸었고, 미국(37초52)과 일본(38초04)이 뒤를 이었다.

    트랙에 얼굴을 파묻은 볼트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한참만에 일어났다. 의료진의 휠체어를 사양한 볼트는 이미 경기가 끝난 상태였지만 절룩이는 다리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굳은 얼굴의 볼트는 팬들을 향해 화답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인터뷰도 거절하고 믹스트존을 그대로 통과했다. 여러 외신은 "볼트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전했다. 세계 육상 팬들은 떠나는 '레전드'를 향해 갈채를 보냈다. 볼트의 인스타그램 등엔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응원글이 수만 개가 달렸다.

    볼트는 지난 10년간 육상 단거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그가 보유한 남자 100m 세계 기록(9초58·2009 베를린 세계선수권)은 언제 깨질지 기약이 없는 불멸(不滅)의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만 19개(전체 메달 22개)를 목에 걸었다. 2008년 이후 열린 메이저 대회에서 볼트가 우승하지 못한 건 네 번뿐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 400m 계주 금메달을 땄지만 최근 동료의 도핑 사실이 드러나 박탈당한 것이 그 중 하나고,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 때는 부정출발로 100m 메달을 놓친 일이 있었다. 나머지 2번이 이번 대회 100m(동메달)와 400m 계주(노메달)다.

    동료들은 대회 진행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남자 100m 우승자 저스틴 개틀린(미국)은 "볼트가 레이스 중 다친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앞선 시상식이 늦어져 추운 공간에 너무 오래 대기해서 체온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볼트는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에 부상 치료 중인 자신의 동영상을 올렸다. 실망스러운 성적에 의기소침했을 법했지만 '황제'는 씩씩하게 말했다. "내가 원했던 마지막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트랙에 바쳤어요. 다시 경기장을 찾아 여러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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