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지금은 전쟁 아니라 외교 단계… '말 폭탄'은 協商으로 가는 막바지 과정"

    입력 : 2017.08.14 03:04 | 수정 : 2017.08.14 08:29

    ['화염과 분노'는 과연 현실화될까… 여권의 '외교통' 이수혁 의원]

    "좌파는 迷夢 속에 빠진 비현실주의자로 보지 말라
    文대통령의 북한 보는 눈은 그렇게 나이브하지 않아"

    "태도를 안 바꾼다고 국제사회가 주권국가를
    사형이나 파멸시킬만큼 제재 가할 수는 없다"

    CNN을 틀면 며칠째 '일촉즉발의 미·북 전쟁'이 톱뉴스이지만 이수혁(68)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서로 '말 폭탄'을 쏘아대고 있는 것뿐이다. 이는 외교 단계지 군사행동 단계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낙관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지금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중국과 러시아가 격렬하게 반대하는데 미국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수혁 민주당 의원은“핵 문제에서 우리를 배제한 미·북 간의 접촉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혁 민주당 의원은“핵 문제에서 우리를 배제한 미·북 간의 접촉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트럼프는 "북한 정권에 대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는 말도 충분치 않다. 군사 옵션이 이미 장전됐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고 했는데, 전쟁은 없다고 보나?

    "큰소리로 전쟁을 하겠다고 할 때는 전쟁이 안 난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 '괌 폭격'이라고 공갈을 치는 것이나 트럼프가 전쟁 불사를 천명해 군사력 시위를 하는 것도 외교의 영역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는 협상장으로 가기 위한 막바지 과정이다."

    이런 '안보 불감증' 같은 분석에 보수 진영은 동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균형을 위해서도 반대 견해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조만간 드러날 테니까. 이 의원은 여권의 대표적인 외교 전략가다. 노무현 정부 시절 6자회담 수석 대표, 독일 대사, 국정원 1차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외교·안보 멘토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하면 북한과의 경색 관계가 풀릴 걸로 기대했을 텐데 '베를린 구상'도 북한이 받아주지 않았다.

    "베를린 구상은 선언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북 대화가 곧장 받아들여질 걸로 기대할 만큼 문 대통령은 나이브(naive)하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이은 소위 '민주 3기 정부'로서 손을 내밀었는데 북한의 반응이 저러니 상당히 실망은 했을 텐데….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한 것처럼 몰고 가고 싶나(웃음). 좌파는 미몽(迷夢) 속에 비현실적이고 낭만주의 정책을 쓰는 것으로 보는데, 문 대통령의 북한 보는 눈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주위 참모들도 그렇다. 우선 내가 나이브한가. 북한이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 우리가 북한에 주는 게 없고, 북한은 받을 게 없는데 왜 하겠나. 다만 우리 정부는 대북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 안보 정책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비친다. 이게 국민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대화에 방점을 많이 뒀다가 지금은 '강압'으로 옮겨갔다. 열흘 전 내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강압 외교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이 저렇게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여름휴가를 다녀온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한 통화 내용을 보고는 안도했다."

    ―왜 안도했나?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 조치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쳤는데, 트럼프에게 그걸 해소해준 통화였다."

    ―통화에서 트럼프가 문 대통령에게 '북한과 대화를 해봤나?'라고 한 질문은 마치 '우리 말 안 듣고 해보니 어떻더냐?'며 찌르는 것처럼 들렸는데?

    "질문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나 '당신네가 대화를 해봐야 별거 없다'는 뉘앙스로 받아질 수도 있겠다. 어쨌든 문 대통령이 '북핵 억제를 위해 강압 외교에 동참한다'고 밝히지 않았나."

    ―현 정부는 앞으로 대북 압박 노선으로 갈 것으로 보나?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이상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없다. '강압 외교'는 북한을 밀어붙여 대화하려는 수단이다. 이렇게 가다가 미국과 북한 간에 모종의 접촉이 있을 것으로 본다."

    ―현 정부가 일관되게 대북 제재 노선으로 가야 했는데, 사드 배치 문제부터 우왕좌왕하면서 미국의 신뢰를 잃었다고 보지 않나?

    "그런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보수 언론은 현 정부의 대북 안보 정책에 대해 너무 심하게 꼬투리를 잡는 것 같다. 북한을 향해 어떻게 말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도 처음에는 김정은에게 한번 만나자고 했지 않나. 며칠 전부터는 전쟁을 치를 것처럼 상황을 몰고 갔지만, 어저께는 '나는 평화적 대화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악의 안보 위기를 맞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나는 지금의 모든 과정이 협상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괌 폭격' 협박은 고강도의 대북 유엔 제재안 통과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이번 제재의 약발은 있을까?

    "제재 조치는 형법상으로 보면 형벌(刑罰)이다. 벌을 가하는 것은 과거 행위에 대한 응징 목적인가, 아니면 앞으로 태도가 바뀌도록 하는 목적인가. 법 해석으로는 전자(前者)가 다수설이다. 그런데 대북 제재에서는 후자를 기대했다. 제재를 통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유엔 결의안도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고 보나?

    "핵과 미사일이 완성될 때까지 어떤 제재와 압박도 감수하겠다는 게 북한이다. 이렇게 나오면 해볼 방법이 없다. 태도를 안 바꾼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주권국가(북한)를 사형시키거나 파멸시킬 만큼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유엔 제재안에서 석유 금수(禁輸) 조항을 막판에 뺀 것도 이 때문이다. "

    ―김정은 정권을 교체시키는 것은?

    "그것도 할 수가 없다. 강대국이 어떤 국가의 내정에 개입해 정권 교체를 할 수 없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처럼 일방적으로 북한을 복속시킬 수도 없지 않나. "

    ―이도 저도 아니면 무슨 방법이 있나?

    "딜레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에 모든 걸 걸고 있다. 제재를 통해 아무리 막아도 안 된다. 결국 그 단계까지 갈 것이다. 다만 만들어놓고 나서야 어디에 쓸 것인가 고민할 것이다. 그때쯤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북한은 핵을 갖고 우리는 없는 '안보 비대칭' 상황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

    "이야말로 불가역적(不可逆的)이다. 25년간 그렇게 진행돼왔으니 답답하지만 돌릴 수 없다.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택하지 않는 한 해결 방법은 협상뿐이다. "


    ―핵의 비대칭으로 협상에서는 북한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핵을 못 가졌지만 미국은 최대 핵 강국이지 않나. 북핵과 미사일을 의제로 미국과 북한 간에 접촉이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빠진 미·북 간 협상을 말하나? 이른바 '코리아 패싱(passing)'이 현실화된다는 뜻인가?

    "1994년 제1차 제네바 핵 협상을 하던 김영삼 정부 시절이야말로 원조 '코리아 패싱'이었다. 당시는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를 막 시작하려는 시점이었다. 미사일은 아예 개발 전이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난리를 쳤다. 미국이 나서서 협상이 이뤄졌다."

    ―당시 미·북 간 협상을 벌일 때 우리는 어떻게 했나?

    "사전에 우리는 미국과 협상 의제를 충분히 조율했다. 막상 협상이 벌어질 때는 우리 외교팀은 제네바 호텔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협상이 끝나고 나면 미국 쪽으로부터 협상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렇게 우리가 배제되는 상황이 앞으로 또 닥치게 된다는 뜻인가?

    "북한은 핵무기와 ICBM의 완성 단계에 와있다. 1994년 때보다 상황이 몇 만배 악화됐다. 미국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하지만 전쟁을 택하지 않는 한 방법은 협상밖에 없다. 내 경험상 조만간 미·북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1994년처럼 우리는 그 협상에서 빠지게 되고?

    "북한이 우리를 끼워주지 않는다. 우리가 있으면 자신의 주장 관철이 쉽지 않으니까. 결국 우리가 빠질 수밖에 없다. 1994년 제네바 미·북 협상에서는 경수로 건설을 타결했다. 협상에 배제됐지만 우리가 그 건설 비용의 80%를 댔다. 당시 미국은 한 개를 지어주자고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어차피 통일되면 우리 것이 된다고 여겨 두 개를 지어줬다."

    ―우리가 반대해도 그런 미·북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나?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은 미국을 향한 것이다. 따라서 협상 상대는 미국이다. 이를 '코리아 패싱'으로 볼 게 아니다. 지금 내가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은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다. 조만간 닥칠 그런 상황에 대한 면역력을 지금부터 갖추도록 하는 거다. 미국과 북한은 그런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전쟁 불사론 등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배제되는 상황이 조만간 현실이 된다는 것인데?

    "꼭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미·북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다루지만, 또 하나의 트랙(track)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이나 긴장 완화를 위한 4자 혹은 6자 회담이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운전석에 앉으면 된다."

    ―이런 주장은 무엇에 근거한 건가?

    "1994년 제네바에서 미·북 협상이 이뤄지고 3년 뒤에 평화 체제와 군사 긴장 완화를 위한 4자 회담이 만들어졌다. 그때 내가 관여했다. 앞으로 '시즌 2'가 이뤄질 것이다. 그때처럼 제2차 제네바 회담과 4자 회담이 열릴 게 틀림없다. 전쟁을 원치 않는 이상 협상밖에 없다. "

    ―그때 협상은 실패했고, 북한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우는 시간만 벌어줬는데?

    "실패했다고 협상을 하지 말라는 건가.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협상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강압 외교에 중점을 둬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시키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거라고 본다."

    ―핵개발 단계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협상으로 북한이 다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포기하겠나?

    "협상 과정에는 비용이 안 드는데 왜 안 하려고 하나. 협상을 해야 북핵 관리가 되고 전쟁을 막을 수도 있지 않나."

    ―세계 전쟁사를 봐도 협상이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하고자 할수록 오히려 상대는 그걸 약점으로 잡고 전쟁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술핵 도입 등 대칭 억제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쳇바퀴 도는 얘기를 하는 거다."

    ―다시 묻지만, 북한이 협상 조건을 받아들여 완성된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보나?

    "글쎄, 사실은 별로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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