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반중(反中) 정당 활동가가 중국 국가 안전원으로 추정되는 괴한에 납치된 후 스테이플러를 몸에 박는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홍콩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11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 반중정당 민주당의 간부인 람쯔킨(林子建)은 이날 오후 기자 회견을 열고 이 같이 주장했다.
람쯔킨은 전날 오후 낮 시간에 홍콩 몽콕 번화가에서 건장한 남자 2명에 의해 차에 강제로 태워져 눈을 가린 채 어디론가 끌려가 둔기로 구타를 당하고, 스테이플러로 넓적다리를 10군데 찍히는 고문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람쯔킨은 “그들은 나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묻더니 ‘국가와 종교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서 십자가 모양으로 스테이플러를 찍었다”면 기자 회견 자리에서 자신의 넓적 다리에 박힌 스테이플러 자국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감금한 사람이 4~5명으로 현지 광둥어가 아니라 표준어(푸퉁화·普通話)로 얘기했다면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고문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가 11일 새벽 깨어나 보니 교외 해안가에 있었다”고 말했다.
람쯔킨은 지난달 13일 간암으로 별세한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의 부인을 자신이 접촉했던 것도 이번 납치·고문 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지했다. 람쯔킨은 류사오브가 생전에 좋아하는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의 사인이 들어간 사진을 보내기 위해 그의 부인 류샤(劉霞)와 접촉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람쯔킨은 자신이 납치되기에 앞서 지난 7일 “류샤에게 메시 사인을 보내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협박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랍 당시에도 '류샤오보와 무슨 관계이냐'는 추궁을 받았다면서 이 일에 중국 국가안전 당국이 개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람쯔킨은 기자 회견에서 “어째서 납치당했다 풀려난 직후에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풀려난 후 집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3시여서 너무 피곤했다”며 “이후 민주당과 상의해 신고 전 기자회견을 갖고 폭로하기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홍콩 경찰을 신뢰하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람쯔킨은 회견을 마친 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서도 진술했다.
홍콩 경찰은 “람쯔킨이 납치됐다고 주장한 장소의 CCTV를 조사해봤지만 아직까지 수상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고, 납치되는 장면이 담긴 영상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그에게 최대한 협조를 부탁하고 있지만 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진술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의혹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람쯔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 ‘1국2체제’에 반하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지적했다.
민건련(民建聯) 리와이킹(李慧瓊) 주석도 “만일 중국 기관원이 관할을 넘어 홍콩에서 저지른 일이라면 홍콩기본법을 위반하는 심각한 사건으로 경찰이 엄정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홍콩에선 2015년 중국 당국이 금서를 지정한 책을 취급하던 통로완(銅鑼灣) 서점의 관계자 5명이 차례로 중국에 강제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다.
당시 홍콩의 고도 자치를 침해했다면서 중국에 대한 불신 여론이 현지에서 고조됐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제2의 통로완 서점 사태’로 단정하고 정부와 경찰에 적극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