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靑수첩·문건이 뇌물증거라는데… 작성자들은 "그건 아니다"

    입력 : 2017.08.12 03:23 | 수정 : 2017.08.12 07:10

    [2주 앞으로 다가온 이재용 선고… 핵심쟁점·관전 포인트]

    - 자백 없이 정황증거만 있는 '뇌물 기소'
    특검 "박 前대통령 지시 받아적은 글에 삼성 경영권 언급 있다"
    삼성 "문건 작성한 안종범·靑행정관, 합병지시 없었다고 증언"

    - 삼성, 뇌물 줬나 최순실 공갈에 당했나
    특검 "경영권 승계 도움 받으려 최순실에 송금, 정유라 승마 지원"
    삼성 "대통령의 요구받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피해자"

    - 경영권 승계 도와달라는 청탁 있었나
    특검 "3차례 독대 후 청와대·정부 차원의 삼성지원 이뤄졌다"
    삼성 "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등 사실 관계 달라… 짜맞춘 수사"

    '세기(世紀)의 재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공방이 치열했던 '삼성 사건' 선고(25일)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법조인들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재판부는 선고 생중계를 허용할지 고심 중이다.

    특검은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 뇌물을 주었거나 주기로 약속했다며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번 사건은 통상의 '뇌물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 대개는 뇌물을 준 쪽(공여자)의 진술이 직접 증거로 작용해 받은 쪽을 처벌하는데, 이번 사건은 양쪽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선 수사기관이 내놓은 증거를 통해 의심할 여지 없이 피고인의 혐의가 증명될 때 유죄를 선고한다. 판결의 향방은 특검이 확보한 증거가 그만큼의 증명력을 갖느냐에 달렸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재판 결과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경영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검은 "삼성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건넨 뇌물임이 명백하게 입증됐다"고 한 반면, 변호인단은 "특검이 존재하지도 않는 일을 근거도 없는 추측, 편견으로 짜 맞췄다는 게 재판에서 밝혀졌다"고 했다.

    ◇"국정 농단에 편승" VS "피해자를 피의자로 둔갑시켜"

    삼성 측은 지난해 10월 검찰의 국정 농단 수사 때부터 '피해자'라고 해왔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박 전 대통령이 강요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204억원)을 냈다고 본 것이다. 뇌물 사건을 직접 다루진 않았지만 헌법재판소도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며 "대통령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특검팀이 출범하면서 사건의 큰 줄기가 '강요'에서 '뇌물'로 바뀌었다. 특검은 지난해 9월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독일에서 타던 수억원대 말을 다른 말로 바꿔 '뇌물 은폐'를 시도했다고 봤다. 그러나 삼성 측은 "승마 지원은 원래 올림픽을 대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최씨가 끼어들어 변질시켰다"며 "최씨의 공갈에 당했고 해코지할까 두려웠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출범 때부터 삼성은 피해자가 아니라 국정 농단을 통해 이익을 취했다는 막연한 선입견을 갖고 수사했다"고 말했다.

    ◇경영 승계 도와달라는 청탁은 있었나

    재판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툰 지점이다. 특검의 기소 내용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출발한다. 독대는 2014년 9월 15일(1차), 2015년 7월 25일(2차), 2016년 2월 15일(3차) 등 세 차례 있었다. 그런데 배석자나 녹취록은 없었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독대에서 '청탁'을 주고받은 일이 없다고 진술했다.

    직접 증거에 해당하는 관련자들의 자백이 없는 상황에서 특검은 3가지 물증을 제출했다. '안종범 수첩' '대통령 말씀자료' '민정수석실 문건'이다. 이 중 특검이 사초(史草)에 비유한 안종범 수첩은 박 전 대통령이 독대 직후 말한 내용을 안 전 수석이 받아적은 것이다. 여기엔 '삼성-엘리엇 대책'(2차 독대), '금융지주회사' '승마'(3차 독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대통령 말씀자료는 윤인대 전 행정관이 2차 독대를 앞두고 만들었다. 말씀자료엔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문구가 있다. 2014년 말 이영상 전 행정관이 만든 민정수석실 문건엔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같은 메모가 있다. 특검은 이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의 현안을 논의했고, 청와대·정부 차원의 삼성 지원이 이뤄졌다고 봤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증인으로 나와 "삼성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승계 작업에 시간이 없어 다급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은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청탁도 있을 수 없다"고 맞섰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증언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안종범 수첩의 주인인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관련 지시를 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의 수첩은 63권인데, '정유라' '삼성 합병' '최순실' 같은 문구는 적혀 있지 않다. 그는 재판에서 "특검이 삼성 관련 진술을 하라고 회유·압박했다"며 "(특검이) 저보다 (수첩 내용을) 잘 보시는 것 같네요"라고도 했다. 윤 전 행정관은 "말씀자료는 인터넷 뉴스를 참고해 만든 것"이라고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실제 말씀자료대로 말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주장과 배치되는 독대 전후의 정황을 제시했다. 대구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에서 있었던 1차 독대는 불과 5분도 안 돼서 끝났고, 박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사전에 계획된 것도 아닌 만남인 데다, 그 짧은 시간에 '승계 작업' 청탁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또 "1차 면담 직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이 무산됐는데, 청탁이 있었다면 무산됐겠느냐"고 했다.

    변호인단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2차 독대 8일 전인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 결의까지 끝났다"며 "이미 합병이 성사됐는데 무슨 청탁을 한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제가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면서 (합병을) 욕심냈다는 것은 너무 심한 오해"라고 말했다.

    삼성 측은 이른바 '승마 지원' 금액을 여러 차례 깎으려 했던 것으로 재판에서 드러났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면서 금액을 깎으려 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라며 "특검이 존재하지도 않는 승계 작업이라는 가공(架空)의 틀을 만들어 수사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개입했나

    특검은 이 부회장 지시로 뇌물 공여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경제계의 최고권력자와 정계의 최고권력자가 큰 틀의 합의를 하고 삼성 계열사와 정부부처가 동원돼 세부 내용이 정해졌다"며 "총수가 몰랐다는 건 경험칙이나 상식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최순실·정유라의 존재도 몰랐는데 어떻게 뇌물을 줄 수 있느냐"며 "세 차례 독대 때 정유라 이름이 나온 적도 없다"고 했다. 최지성 전 부회장(미래전략실장)은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고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어서 사장단 회의에서 추대하면 승계가 된다"며 "승계 작업 자체를 할 필요도, 한 일도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최씨가 중간에 장난질을 친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회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며 "문제가 되면 내가 책임지고 물러나려 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이나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오히려 (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전 사장은 도와주겠다는 최씨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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