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탈모인(脫毛人) 촛불 시위

    입력 : 2017.08.12 03:16

    모발 이식을 시술하는 의사들에게 "당신의 경쟁 상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옆 건물 모발 클리닉 원장이라고 하지 않고, 탤런트 '이덕화'라고 말한다. 가발 광고가 늘면 모발 이식이 줄기 때문이란다. 모발 이식은 가발 발달 때문에 한때 주춤했는데 요즘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한다. 뒷머리에서 모낭만 뽑아 앞쪽에 옮겨 심는 기술이 좋아지고, 옮겨 심은 모근 생존율이 90%로 높아졌다. 한 올 심는 데 3000원 정도 한다.

    ▶탈모 치료받는 '환자'들은 진찰료·검사비·처치료·약값 등을 고스란히 자기 지갑에서 낸다. 건강보험이 안 된다. 게다가 탈모 치료는 미용 의료에 속해 전체 금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더 낸다. 병·의원에 쓴 비용은 연말정산 때 세제 감면을 받는데 여기서도 탈모 치료비는 제외다. 사고나 질병으로 외모가 안 좋아지면 법원에서 '추상 장해' 판정이 나온다. 성형 후유증, 흉터, 백반증은 장해로 나오는데 머리카락은 앞머리와 눈썹이 뭉텅이로 빠진 원형탈모증도 장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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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정부가 30조원을 들여 MRI·2인실·간병비 등을 건보에 포함시켜준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탈모 치료가 빠지자 "정신 질환까지 유발하는 심각한 질병인데 왜 차별하느냐?"며 500만 탈모인이 촛불 시위를 벌이겠다고 한다. 건보에 빠진 고도 비만, 코골이, 발기부전, 하지정맥류, 무모증, 다한증 등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데, 어느 걸 넣고 어떤 걸 뺄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여년 전 미국 오리건주에서 의료비 지원 항목에 우선순위를 매겼다.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죽고 사는 문제인지, 시급한지,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지 등을 놓고 따졌다. 709개의 순위 목록이 정해졌고 예산을 감안하여 574등까지 지원키로 했다. 라식이 꼴찌로 탈락했고, 생존율 5%인 암(癌) 상태 환자를 완치 목적으로 하는 치료도 뒷순위로 밀려 빠졌다. 주정부는 이런 식으로 아낀 돈 갖고 저소득층 의료 지원을 늘렸다.

    ▶의학계에서는 요즘 나오는 항암제들의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재정 독성'(financial toxicity)이라고 말한다. 치료 효과도 좋고 후유증도 적지만 한 달에 몇백만원 하는 약값 때문에 환자들이 죽어난다는 의미다. 이에 영국에서는 고가 항암제를 건보에 적용할지 국민 설문조사를 벌인다. 최근 정부가 뚜렷한 재원 대책 없이 복지 확대 방안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면 국민이 뭘 원하는지, 시급한 게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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