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12 03:02

    [마감날 문득]

    운이 좋아 비즈니스석에 타본 적은 있지만 감히 그 좌석 비용을 치르고 비행기를 탄 적 없다. 그래서 공항 카운터에 갈 때마다 몇 번 열 어느 좌석에 앉아야 하는지 신경이 곤두선다. 제주도나 일본에 갈 때만 해도 잠깐 참으면 되지 하는데 미주 대륙에 갈 때면 맘에 없는 미소까지 지으며 "만석인가요? 혹시 비상구 옆좌석에 앉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곤 하는 것이다.

    캐나다에 다녀오면서 좌석 배정받을 때도 그랬다. "혹시 비상구 옆좌석이…"라고 했더니 "만석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늘 궁금한 것은 아무리 일찍 예매해도 비상구 옆좌석은 지정할 수 없고 공항에 3시간 일찍 나가면 얻을 수도 있다 해서 이도 닦지 않고 나가봤건만 한 번도 얻은 적이 없다.

    어느 날 운 좋게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아 앉았더니 스튜어디스가 와서 물었다. "여기 앉으시면 비상시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야 합니다. 국제선이어서 영어를 자유롭게 하실 수 있어야 하는데… 가능하신가요?" 나는 "오브 코오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네… 아마도요"라고 말하고 간신히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항공사 직원이 배정해 준 좌석은 36H였다. 다행히 비행기 우측 세 자리 가운데 복도 쪽 자리였다. 창 쪽에 키 180㎝ 몸무게 95㎏ 거구가 앉았으나 내 좌석을 침범하긴 어려웠다. 이윽고 도착한 가운데 자리 승객은 호리호리한 한국 아주머니였다. 그나마 편히 가겠구나 하고 신문을 펼쳐 든 순간, 키 185㎝에 몸무게 110㎏쯤 돼 보이는 거구가 와서 그 여자분께 물었다. "저쪽에 다들 계시던데… 여기 제가 대신 앉을게요."

    이코노미석 팔걸이 폭은 약 5㎝로, 두 사람이 2㎝씩 걸치면 1㎝의 비무장지대가 형성되는 구조다. 그러나 여성에게 호의를 베푼 남자의 팔뚝은 그 팔걸이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굵었다. 나는 왼쪽 팔걸이에 기댄 채 반야심경을 외우고 싶었으나 모르기 때문에 구구단을 외우면서 잠을 청했다.

    오른팔에 뜨뜻한 온기가 느껴져서 퍼뜩 잠에서 깼다. 나도 모르게 오른쪽 모로 누워 자고 있었는데 거구는 왼쪽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그의 팔이 내 팔에 닿아있었다. 참 뜨뜻한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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