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지켜주고 싶은 '나의' 리더

  •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입력 : 2017.08.12 03:02 | 수정 : 2017.08.12 07:11

    [남정욱의 명랑笑說]

    위대한 軍지도자?
    칭기즈칸·나폴레옹보단 챙겨주고 싶은 한니발

    카리스마만 있으면 '꽝'
    지도력은 지도자 아닌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남정욱의 명랑笑說]
    역사를 통틀어 전쟁 천재를 들라면 보통 알렉산드로스, 칭기즈 칸, 나폴레옹을 꼽는다. 셋 다 전쟁의 틀 자체를 바꾼 사람들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보병끼리 방패를 맞대고 싸우던 시절에 기병대라는 새로운 패턴을 도입해 그리스 반도와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칭기즈 칸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군대 진급 시스템으로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나폴레옹은 현대 전쟁을 개막시킨 인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아레스(전쟁의 신)였다.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꾸면 다른 인물이 보인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간 한니발이다. 산은 지상에 내려앉은 신(神)의 심장이다. 그래서 영산(靈山)은 인간의 발걸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중 압권이 알프스다. 알프스를 실제로 본 분들은 다 안다. 고대(古代)에 그 산맥을 횡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이었는지.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지형이라는 그 산을 눈(雪) 한번 경험해보지 못한 북아프리카인이 넘은 것이다.

    실제로 한니발은 7개월 장정 동안 군사의 절반을 설산(雪山)에 제물로 바쳤다. 게다가 그 군사들은 한니발이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용병이었다. 금전적 보상과 강압적 명령만으로는 절대 이런 행군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니발은 산을 넘는 동안 한 번도 특권 계층이었던 적이 없다. 그는 용병들과 똑같이 꽁꽁 언 음식을 먹었고 폭설이 쏟아지는 낭떠러지에서 잤다. 그게 다일까. 한니발이 땅바닥에 웅크려 자고 있을 때 병사들은 한니발이 잠에서 깰까 봐 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옆을 지나갔다. 병사들은 한니발의 짧은 잠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한니발군 알프스 등반 성공의 진짜 이유다. 강한 지도력의 핵심은 지도자가 아니다. 그 지도자가 이끄는 사람들이다. 리더를 지키겠다는 지지자 숫자가 견고할 때 지도력은 완성된다. 지켜준다는 것은 그가 힘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가 없으면 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니발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도자였다.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김근태가 따라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노무현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노무현이 세 번 낙선 끝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그를 바보라 부르면서 지지하는 그룹이 생겼다. 이들은 노무현이 자기들에게 뭔가 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반대로 노무현에게 뭐든 해주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생업을 뒤로하고 후보 경선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카리스마만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정치인은 하수다. 진짜 고수는 지지자들에게 사수(死守) 의지를 끌어내는 사람이다. 백날 개혁과 혁신을 떠들어봐야 이런 정치인을 길러내지 못하면―이 표현은 좀 잘못됐다. 이런 유형은 절대 양식(養殖)에서는 안 나온다. 오로지 자연으로만 가능하다―말짱 공염불이다.

    다큐멘터리 마지막은 노무현이 홀로 출근길 유세를 하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운동 가요를 마치 트로트처럼 부르며 걷는 그의 뒷모습은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생전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달려가 감싸주고 싶은 등이고 어깨다. 저절로 이런 소리가 나온다. 당신들은 좋았겠다. 노무현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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