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고향 광안리 잔잔한 파도… 고층건물 때문이라니!

  • 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

    입력 : 2017.08.12 03:02

    [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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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안리 매립된 바다 위에 우뚝 선 고층 건물들. / 한대수씨 제공
    "야! 정말 오래간만이다!" 11개월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양호가 여름방학을 맞이해 "잘됐다, 가자!" 하며 두 딸을 데리고 신나게 케네디 공항으로 향했다. 오페라하우스는 나의 50년 음악 인생에서 처음 서는 무대라 무척 흥분됐다. 다행히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왕 한국 온 김에 아름다운 여행을 해야지! 제일 먼저 택한 곳이 바로 부산. 나의 불알친구 희재가 있고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갔다. KTX를 타려다가 옛 추억을 되살려 무궁화호를 탔다. 화폐도 절약하고 고등학교 때 쐬주와 오징어 꼬랑지 빨며 가던 시절이 생각나서다. 6시간 동안 널찍한 좌석을 만끽했지만 솔직히 시간이 너무 길었다. 신나 하던 양호가 지루해할 정도였으니.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광안리로 향했다. 광안리는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나의 절친 '고릴라'와 함께 수영도 하고 동래여고생과 데이트하려고 싸돌아다니던 곳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고릴라는 10년 전에 지구를 떠났다.

    오랜만에 본 광안리는 많이 변했다. 고층 건물이 가득 차고 해변가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숍도 많았지만, 바다와 모래가 깨끗하지 않고 파도가 너무 잔잔했다. 친구에게 "자야! 왜 이래 파도가 약하노?" 하고 물으니, 바다 왼쪽을 매립해 고층 건물들을 세우는 바람에 조류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광안리 앞바다에 펼쳐져 있는 광안대교도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슬프다. 내가 어릴 땐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 백사장이 연결돼 한눈으로 볼 수 있었다. 60년 전 청순한 바다를 기대하는 것은 나의 욕심인가? 그러나 광안리 해수욕장은 안전요원과 안전설비가 매우 잘되어 있어 아이들이 자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양호는 3시간 동안 물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자, 그럼 완도로 가자! 완도에는 나의 친구 준희가 음악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뉴욕에 있을 때도 "형, 나 완도에 새로 집을 지었고 땅도 좋아. 여기 와서 좀 푹 쉬고 가" 하며 나를 수십 번 유혹했다. 완도는 정말 좋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알맞게 개발됐고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완도 하면 전복! 우리나라 전복의 80%가 여기서 생산된다. 사실 전복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이틀 뒤엔 질려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김! 완도 김은 품질이 너무 좋아 1960년대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배 한 척에 완도 김을 가득 싣고 일본에 가면 돈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이 삼성의 종잣돈이 됐다는 루머도 있다. 정말 자연이 잘 보호된 멋진 섬이었고 특히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내가 본 우리나라 바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이었다. 7월 말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맙게도 서울 직행 고속버스가 하루 4회씩 있어서 여행이 아주 편리했다.

    그리하여 나의 한국 공연 여행은 아름답게 끝났다. 무엇보다 아줌마들의 친절. "반찬 좀 더 줄까요?" 뉴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삼겹살 굽는 연기 속에 기울이는 소주잔. 캬! 한국은 아직 살아 있다. 여러분, 여름입니다.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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